▲표지석.압록강 표지석
이정근
청나라가 칼을 빼들었다. 용골대를 국경에 파견한 홍타이지는 영의정을 비롯한 3정승을 소환하고 최명길, 김상헌, 임경업을 체포 압송하라는 명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극우로 지목된 '척화5신'을 심양으로 압송할 시나리오를 확정하고 의주에 도착했다.
조선 관료사회가 한기에 얼어붙었다. 용만에 불려간 영상과 좌·우의정은 바짝 엎드렸다. 청나라가 조선관료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다. 조선에겐 병자년 이후 최대의 위기다. 인조는 승려 독보를 명나라에 밀파한 후폭풍이 자신에게 밀려올까봐 서둘러 꼬리 자르기에 나섰다. 그 희생양이 이계였다.
선전관과 금부도사는 정책 결정자가 아니라 집행자다. 조정의 공기를 감지한 그들은 부담감을 느꼈다. 박지용과 정석문은 의주에 들어가 형을 집행했다. 다음날 이계의 형 집행을 정지하라는 파발이 날아왔다. 하지만 이계의 목이 저잣거리에 효시된 후였다.
한양으로 압송된 금부도사와 선전관은 파직되어 의금부에 하옥되었다. 그로부터 33년 후. 숙종1년(1675). 역적 혐의로 참수된 이계는 허적·권대운·허목의 청으로 신원 되었다. 천천히를 실행한 박지용과 정석문은 역사의 수레바퀴가 구르는 속도를 알았는지 모른다.
군자는 군주의 뜻을 따르되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김상헌은 그의 문집 <풍악문답(豊岳問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하는 임금의 뜻을 따르지 그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군자는 오직 의(義)를 따를 뿐이다. 의를 돌보지 않고 명령만 따르는 것은 환관들이나 하는 맹종이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충성이 아니다."외교, 국방, 교과서 정책에서 관료들이 허둥대는 모습이 안타깝다. 설레발치지 않아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구른다. 목적지도 정해져 있다. 현재 그것을 모를 뿐이다. 명을 집행하는 관료들이 영혼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 일 것이다. 하지만 어려운 여건에서도 영혼을 지킨 관료들을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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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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