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 풍경임시로 현관앞에 달아둔 풍경의 소리를 듣고 또 다른 세상을 알게 됬다.
정부흥
풍경에 얽힌 사연
서울 나들이 때 인사동에 들러 갖고 싶었던 풍경(風磬)을 샀다. 두 개를 사고 싶었지만 우선 한 개로 의미를 새김질해보고 '꼭 필요한 물건이다' 싶으면 하나를 추가로 구입해 처마의 양쪽에 걸어 둘 생각이다.
풍경은 시리고 투명한 바람에 어울리는 소리를 낸다. 때문에 계룡산자락에 있지만, 한옥이 아닌 전원주택인 우리집은 풍경을 달아놓고 바람소리를 즐기기엔 어울리지 않는다. 지리산 시랑농장에 본집을 지을 때까지 시랑헌에 걸어둘 생각이었으나 집사람 안전사고 이후 시랑헌에 가질 못해 당분간 계룡산 집 현관입구에 걸어두었다.
바람이 불지 않아 스스로 울리지 않으면 집에 들어 오거나 나갈 때 풍경 밑에 달린 붕어 꼬리를 잡고 풍경을 울려본다. 세게도 울려보고, 빠르게도 울려본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풍경을 산 것 같다. 맑고 청량한 맛이 여간 정갈한 것이 아니다. 풍경소리로 귀를 씻고 머리를 감는 재미가 요즈음 사는 맛이다.
풍경은 절에 가면 흔히 볼 수 있어 가끔 절의 대명사로 쓰인다. 금산사의 일감스님으로부터 풍경 아래 달린 붕어의 사연을 들었다. 붕어는 잠을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단다. 선승들이 이를 본받아 열심히 공부하라는 격려인 것. 동시에 처마 아래서 노니는 물고기는 물 속에 잠긴 절을 뜻한다. 따라서 화재의 염려가 없다는 말씀이다. 풍경에 매달린 붕어 한 마리에도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멋진 일인 것 같아 미소로 답례해드린 기억이 새롭다.
풍경소리와 함께하는 참선과 화두 새벽 5시, 거실에서 등을 곧추세우고 묵묵히 앉아서 모든 생각을 끊고자 묵조선(默照禪)을 시작한다. 간화선(看話禪)을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화두를 들지 않으면 참선이 아니라고 하지만, 어찌됐던 나만의 스타일로 수식관(數息觀)을 겸한 참선을 한다. 겨울바람에 현관에 달아둔 풍경이 세속에 찌든 때를 벗겨 줄듯 공(空)의 실체를 법문한다. 풍경소리를 쫒다 보면 자연스레 풍경소리 따라 영혼이 마실 나간다. 굳이 형태를 따지자면 묵조선으로 시작하여 지관참선법(Vipasyana)으로 끝을 맺는 격이다.
지관참선법은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아래서 수행한 방식으로 현세에 일어나는 미세한 현상까지도 자연 그대로 관찰하여 그 본질을 터득하는 수행법이다. '풍경소리가 좋다. 바람이 불고 있구나. 내 쪽으로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을 보니 북동풍인가보다. 그렇다면 지금 계절은 겨울이구나. 집 없는 사람들은…'하는 식으로 사실을 직관하다 보면 오바마의 내복 색깔까지도 추론할 수 있다는 관법이 지관참선법이다. 티베트 및 동남아에서 많이 사용한다.
화두는 옛 조사들이 견성을 위한 참구(參究) 공안으로 250여 가지가 된다. 예를 들어 성철스님이 들었던 '이 뭤꼬'를 비롯해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묻는 선승에게 '무(無)'라고 답한 조주 스님의 '무(無)'자 화두 등이 우리들 같은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화두이다. 예상 답안은 유(有) 인데도 조주 스님은 무(無)로 답했다. 조주 스님이 가르키는 달을 봐야 답을 얻을 수 있지 손가락 끝을 봐서는 평생 죽을 고생만하다가 끝나는 화두란다.
화두는 달마 스님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전파한 새로운 선불교의 주체라고 볼 수 있다. 화두는 얼핏 들으면 동문서답 같지만, 그 근본을 이해하여 꿰뚫어 보게 되면 삼라만상에 상존하는 법을 볼 수 있는 혜안이 생겨 원리를 터득하고 열반에 든다는 것이다. 중국, 한국, 일본에서 주로 사용하는 수행법이다. 화두는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의 뜻과 같이 항상 자신과 온전히 일치시켜야만 타파할 수 있는 매우 어렵고 힘든 길이란다.
화두를 들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나의 내면으로 향하는 여행이라 가까우면서도 멀고먼 길이란다. 수행 길을 잘못 들지 않기 위해 선지식(善知識)을 만나는 인연이 닿을 때까지 용맹정진해야 하는 간화선(看話禪)을 뒤로 미루고 있지만 언젠가는 인연이 닿으리라 믿는다.
인과응보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해 요즈음은 피천득 교수의 수필집 <인연>을 항상 손에 닿는 곳에 두고 있으며 정찬주씨가 쓴 일타스님의 일대기를 소설형태로 풀어 쓴 <인연>의 상·하권을 읽고 있다. 일타스님 친족 및 외족을 포함하여 46명 모두가 부처님 나래로 찾아 들었다는 전례를 찾기 힘든 놀라운 사실에 몸이 떨림으로 반응한다. 일타스님의 외할아버지 추금스님이 56세 늦깎이로 출가하여 세상을 떠날 때 장작더미에 누워 스스로 다비를 하는 대목이나 일타스님이 중노릇 잘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면서 오른손 손가락 4개를 태우는 모습을 상상하노라면 발심의 각오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얼마나 간절하고 확신에 찼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