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층을 대상으로 한 무담보 소액대출 제도 '마이크로 크레디트'의 대표적인 곳인 사회연대은행의 지원을 받은 제윤도 한아름광고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강서구 등촌동 사무실에서 학원에서 주문한 책자 편집작업을 하고 있다.
권우성
IMF 구제금융 위기 때보다 더 힘들다는 2008년 겨울, 구조조정에 대한 직장인들의 두려움과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의 절망이 넘쳐나고 있다. 무엇보다 "돈의 씨가 말랐다"는 자영업자들의 아우성이 들끓고 있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도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사장님'들이 있다. 이들 역시 다른 자영업자들처럼 작은 가게 하나로 경기 한파와 맞닥뜨렸다. 수천만원의 빚이나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어쩌면 이번 겨울은 평범한 이들의 겨울보다 더 큰 절망으로 다가올 터다.
하지만 이 '사장님'들은 "그래도 희망이 절망보다 더 크다"고 말한다. 과연 무엇이 이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을까? 그것은 바로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무담보 소액대출)다.
대표적 마이크로크레디트 기관인 사회연대은행, 신나는 조합 등에서는 영세민이나 저소득 소외계층에게 보통 연 2%의 저리로 창업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창업지원금은 2000만원(최대 3000만원)으로 겉보기엔 가게를 창업하기에 부족한 금액일 수 있다.
그럼에도 마이크로크레디트를 이용한 사람들은 대부분 홀로서기에 성공해 희망을 나누고 있다. 8일 만난 제윤도(53)·강내형(42) 대표의 사연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말보다 더 큰 힘으로 다가올 것이다.
노트북 하나로 시작한 사업, 대출 자금이 필요했는데
"오타가 났네요. '국산'이라는 글자만 빼달라고 했는데, 메뉴 이름까지 다 뺐네요." 이날 오전 10시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아름 광고 2층 사무실에서 만난 제윤도 대표는 기자에게 얼마 전 주문받은 식당 차림표를 가리키며 껄껄 웃었다. 경기 불황에 조그마한 실수가 짜증을 부를 만하지만 그는 웃음을 잃지 않으며 지하 출력실로 내려갔다.
지하 출력실은 냉기가 돌았다. 최근 주문이 많이 줄어 실사출력기를 사용하는 빈도가 줄어든 탓이다. 작업한 인쇄물이 쌓여있어야 할 선반은 텅 비어있었다. 33㎡(10평) 남짓한 사무실에도 경기 한파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비닐에 쌓인 채 한쪽 벽면에 걸린 코트가 눈에 띄었다.
제 대표는 코트를 가리키며 "실사 출력을 주문한 업체가 폐업해 돈 대신 코트를 가져왔는데, 지인들에게 팔고, 아내에게 몇 개 갖다 주니 6개가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상태가 매우 좋다"며 농을 던지기도 했다.
여유를 잃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 경기 한파에 대한 걱정을 찾긴 쉽지 않았다. 그의 웃음 뒤에 긴 인고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입을 열기까진 알 수 없었다. 제 대표의 이야기는 'IMF' 직격탄을 맞아 횟집을 처분한 지난 1999년으로 되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