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 허전한 당신, 이들을 만나라

김종관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연인들>

등록 2008.12.09 09:14수정 2008.12.0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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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1년 동안 만들어지는 단편영화 수는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대표 독립영화제 중 하나인 '서울독립영화제 2008'이 최근 올해의 경쟁부문 공모를 마감했다. 이 영화제에 출품된 신작 단편영화의 수는 578편. 적어도 한 해에 578편 이상의 단편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참신한 시각과 재능을 가진 인재들을 발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년 많은 단편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은 한국 영화계에 좋은 현상일 것이다. 독일의 거장 감독 빔 벤더스도 일찍이 '모든 위대한 감독들의 영화는 단편영화에서 시작됐다'며 단편영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단편영화는 관심 받기도 어렵고 특히 돈벌이와는 거리가 멀다. 8일간의 영화제 기간이 끝나면 더 이상 관객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잊혀지기 때문. 현재 국내 단편영화의 배급 경로라 하면, 주로 영화제들을 통해 일회적으로 소개되는 것이 전부일 뿐,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2월 4일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된 김종관 감독의 <연인들>은 남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연인들>은 김종관 감독의 단편영화 11편을 모아서 만든 옴니버스 영화. 김종관 감독은 그의 영화에서 특유의 감성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생기는 설렘이나 불안함,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의 모습들을 '연인'이라는 틀 속에 담아내고 있다.

 

단편영화 치고는 익숙한 얼굴도 여럿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편인 <폴라로이드 작동법>에는 영화 <가족의 탄생>, 드라마 <케세라세라>에 출연했던 배우 정유미가, 열 번째 단편 <헤이 톰>에는 CF 기대주인 <빨간 망토 소녀> 김가은과 패션모델 홍종현이 출연한다.

 

<연인들>은 단편영화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한계를 벗어나 극장을 찾아오는 일반 관객들의 자발적인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12월 6일,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갖는 김종관 감독과 배우 정유미를 만났다.

 

 12월 6일, 인디스페이스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갖는 김종관 감독과 배우 정유미
12월 6일, 인디스페이스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갖는 김종관 감독과 배우 정유미이기화
12월 6일, 인디스페이스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갖는 김종관 감독과 배우 정유미 ⓒ 이기화

폴라로이드 작동법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연인들>의 첫번째 에피소드이자 김종관 감독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2004년 레스페스트디지털영화제에서 단편상과 관객상, 미장센단편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며 다수의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 상영되었던 만큼 관객들에게도 익숙한 작품.

 

관객들 중 한 사람이 "이 영화를 이용해서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를 성공했다"고 감독에게 감사를 표시할 정도로 짝사랑의 두근두근한 감성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당연히 감독과 <폴라로이드 작동법>의 출연배우 정유미에게 많은 관객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 두 분에게 각각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어떤 기억인지 궁금하다.

김종관 :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좀 힘을 빼고 찍은 작품이에요. 첫 작품 찍을 때는 좀 그 무게에 짓눌리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정유미씨는 서울예대 선후배 사인데 사실 이 작품 이전에 <사랑하는 소녀>라는 작품을 만들 때 섭외를 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그 작품은 다른 배우랑 하고 그 뒷 작품인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함께 작업을 하게 됐죠.

 

처음에 섭외할 때, 사실 학교 선후배사이긴 한데 같이 학교를 다닌 적은 없었거든요. 그래서 좀 어색했는데, 정유미씨가 그 특유의 어색해하는 모습이 있어요. 그게 상당히 인상 깊었어요. 그래서 <폴라로이드 작동법> 시나리오는 아예 처음부터 유미씨를 염두에 두고 썼죠.

 

영화는 딱 하루 동안 찍었고, 예산도 10만원 정도밖에 안 들었어요. 처음 촬영은 외국어대학교 학보사를 빌려서 찍었는데 저희가 돈도 없고 해서 건물 전원에 이것저것 꽂아서 쓰는 바람에 정전이 나기도 했었죠. 영화 처음에 나오는 폴라로이드 사진은 제가 다섯 살 때 실제로 찍은 사진이에요.

 

정유미 : "저는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찍기 이전에 학교에서 단편영화를 몇 편 찍었었어요. 보통 단편영화라고 해도 며칠 찍거든요. 그런데 이건 좀 특이했던 게 감독님께서 하루 찍었다고 하셨는데 하루가 아니라 반나절 찍었어요. 그래서 저는 속으로 '이게… 과연 영화가 될까?' 했었거든요.(웃음) 그런데 영화 나온 거 보고는 음. 놀랐었어요." 

 

 첫번째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
첫번째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연인들
첫번째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 ⓒ 연인들

- 영화에서 연애를 소재로 많이 다루셨는데 나만의 '실연 극복법'이 있다면.

김종관 : "사실 저는 작품 속에서 연애에 관한 얘기를 한다기 보다는 어떤 관계에서 생기는 불안이나 설레임,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노력 같은 걸 표현하려고 많이 고민해요. 그게 제가 연애경험이 많다거나 그래서 그런 건 아니에요. 실연 극복법은 제가 실연을 잘 극복을 못해요."

 

정유미 : "저는 예전에 딱 한 번 기억이 나는데요. 그냥 막 울어요. 그냥 막 3일을 울다보면 그 다음에는 아무 생각이 안 나요."

 

- 정유미씨는 2004년에 이 작품이 나올 때와 지금 배우로서 많이 성장하셨는데 지금 영화를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

정유미 : "오늘 쭉 영화를 다 봤는데요. <폴라로이드 작동법> 보다는 다른 작품을 보고 가슴 한 켠이 시렸어요. 아 이제 나는 <헤이 톰>에는 나올 수가 없겠구나.(웃음)"

 

<올가을의 트랜드> <헤이 톰>

 

<헤이 톰>은 어른스럽지 않은 취향의 여학생이 친구에게 친구의 남자친구에 대한 얘기를 듣고, 상상하면서 설렘을 느낀다는 내용. <올 가을의 트랜드>는 웹툰 작가와 담당기자의 첫 데이트를 담백하게 그리고 있다.  

 

- 11편의 단편을 보면 유난히 올해 만들어진 <헤이 톰>과 <올 가을의 트랜드>가 다른 단편들에 비해 '관객들에게 친절하다'는 느낌이 든다. 무슨 이유가 있는가?

김종관 : "단편영화를 찍을 때 저는 보통 제가 돈을 대거든요. <폴라로이드 작동법>도 그랬고, 다른 영화들도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일을 받아서 찍은 영화들이 많았어요. <메모리즈>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제작을 맡았던 영화고, <헤이 톰>같은 경우는 <매거진 T>라는 웹진의 홍보영화로 만들어진 영화에요. <올 가을의 트랜드>도 다른 곳에서 의뢰를 받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제가 영화 안에 담아내야 하는 뭔가가 있는 작품들이고 아마 그래서 좀 더 '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한번째 단편 '올 가을의 트랜드'
열한번째 단편 '올 가을의 트랜드'연인들
열한번째 단편 '올 가을의 트랜드' ⓒ 연인들

- <올 가을의 트랜드>에 보면 북촌이 자주 등장하는데 어떤 의미인가?

김종관 : :원래 <올 가을의 트랜드>는 포르투갈에서 개봉하기 위한 목적으로 의뢰를 받아서 만든 작품이에요. 그런데 의뢰를 받을 때 조건으로 딸려온 주제가 '전통적인 가치의 변환'이었어요. 북촌은 원래 집들이 모인 곳이었잖아요. 예전의 거주공간이 카페 같은 걸로 바뀌고 그런 모습들을 영화 속에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낙원>, <길 잃은 시간>

 

<낙원>과 <길 잃은 시간>은 다른 단편들에 비해 김종관 감독 특유의 긴 호흡과 감성적인 여백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 길 잃은 시간’에 나오는 두 남자는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데 사투리가 부자연스러워서 배우들의 연기가 반감되는 거 같다. 굳이 사투리를 설정한 이유가 있는가?

김종관 : "언젠가 길거리에서 경상도 남자 둘이서 싸우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팠던 경험이 있어요. 그래서 그걸 영화로 옮기려고 시도 했던 게 <길 잃은 시간>입니다. 그런데 두 배우 모두 경상도 사투리를 전혀 할 줄 몰랐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마산 사투리로 교습을 하다가, 부산 사투리로도 고쳐보고 했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배우들도 자꾸 사투리에 신경을 쓰니까 연기가 안 됐죠. 결국 '둘 중에 하나만 잘하게 해야겠다' 해서 이렇게 찍었는데 아무래도 좀 어색하죠. 이걸 부산에서 한번 틀었었는데 관객들 반응이 아주…(웃음)."

 

 세번째 단편 '낙원'
세번째 단편 '낙원'연인들
세번째 단편 '낙원' ⓒ 연인들

- <낙원>은 러닝타임이 14분으로 이번에 상영되는 단편 중 가장 긴데, 대사도 없고 마지막에 세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김종관 : "단편작업하다보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는 시를 쓰지는 못하지만 시적인 영화가 되었으면 해요. 낙원의 경우 처음에는 구체적인 내러티브가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다 덜어내고 하나가 여러 의미를 지닐 수 있는 흐름을 생각해서 진행했어요. 애초 엔딩은 어떤 없어져버린 가족이 다시 모이는 서글픈 환상이나 뭔가 사라진 것이 그 자리에 있는 그런 환상적인 느낌을 생각했었습니다."

2008.12.09 09:14ⓒ 2008 OhmyNews
#연인들 #김종관 #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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