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그리고 모자와 수염.
문종성
식민지 시대의 잔재가 미화된 낡고 건조한 올드 아바나에서 옛 향수를 들이킨다. 그리고 조금만 고개를 옆으로 젖혀보면 몸에 맞지 않게 급하게 코스모폴리탄의 옷을 껴입으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다.
아침 커튼을 열 때마다 스카이라인이 바뀌는 개발도상국에 비하면 외형적 성장은 느린 편이지만 아침 인사를 건넬 때마다 자본주의의 기름 냄새를 조금씩 풍기며 배시시 웃는 그들의 모습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역할이 점점 더 생경스러워진다.
이중통화 적용. 외국인 전용 화폐인 CUC는 이제 더 이상 방문자만의 통화가 아닌 쿠바의 일부 서민들도 쓰는 화폐로 확대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시골이나 중소도시에서 많이 통용되는 페소 단위 역시 당분간은 유지될 것으로 보여 미국은 싫어하지만 달러는 사랑하는 이 섬나라가 통화개혁을 단행하지 않는다면 이 두 화폐를 껴안고 살아야 할 운명이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사회주의라면서도 교묘하게 사유재산의 차를 두고 있는 과도기에 정보에 취약한 세대가 이미 쿠바 경제 개혁의 뱃머리에 올라 탄 '경제적으로 선택된' 선발주자들과 궤를 같이 할 것인지 아니면 나라의 지시를 그대로 따라야 하는지 눈치 보는 상황들. 아바나의 시민들은 같은 하늘 아래 전혀 다른 두 가지 제도의 굴레 안에 살아가는 양면성을 보여준다.
1CUC로 24잔(1CUC=24페소)의 망고쥬스를 맛볼 수 있는 가게와 불과 몇 집 건너지 않아 한 끼에 10CUC이상 하는 고급 레스토랑의 묘한 불협화음도 그런대로 어우러져 가는 도시. 방파제 넘어 밀려드는 파도에 꾀죄죄한 아이들과 어울려 다이빙을 하고, 바로 앞에 늘어선 호텔에서 깔끔하게 샤워를 할 수 있는 도시.
여유가 있으면 있는대로 호기롭게 마차를 타고, 없으면 없는대로 뚜벅이 도보 여행으로 마음껏 유람할 수 있는 도시. 엄격한 여행자 통제시스템을 적용시키지만 돈과 때론 진실된 마음만 있으면 사실 어지간한 제도는 죄다 허물어 버릴 수 있는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