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그릇한 그릇을 다 드시고 또 드셨다.
전희식
장수지역은 워낙 추워서 시설재배하는 곳이 없는 걸 확인하고 상대적으로 따뜻한 김제지역 농민회와 농업기술센터에 연락을 했었다. 그분들이 그랬다. 호박농사 지어서 수지가 맞겠냐고 했다. 하긴 그렇다.
겨울에 시설농사 하면서 기껏 호박 키워서는 본전도 못 뽑겠다. 그래서 따뜻한 지역인 전남 강진군청에 연락을 했고 다시 강진 농업기술센터에 연락을 했다. 그곳에서 호박농사 짓는 농부 연락처를 알려줬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드디어 어머니 소원을 풀어 드린다 싶었다. 아, 그러나 그 농부는 그랬다. 작년까지는 농사를 지었는데 홀라당 망해서 올해는 안 짓는다고 했다. 기름값, 비닐값, 인건비 생각하면 호박 하나에 3-4천원은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낙담만 하고 앉았을 수가 없었다. 부푼 희망을 품고 제주도로 연락했다. 제주도청과 역시 농업기술센터로 연락했다. 그 사람들은 뭐 이런 사람 다 있나 하는 목소리였다.
귤 재배에 온 도민이 전력을 다 하는데 호박 농사 그거 해가지고 뭐가 남겠느냐는 것이다. 그 말이 맞았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나는 유기농 귤농사를 짓고 있는 엠이셔리 공동체 후배에게 연락했다. 결론은? "없다" 였다.
그래서 올해는 줄기차게 호박잎을 모았다. 데쳐서 말려 보관을 하고 있는데 내로라 하는 음식의 달인, 우리 형수님이 삶아 냉동실에 보관해야 새파랗게 보관된다고 했다. 그렇게 했다.
우리집 냉장고 150리터에는 호박잎 몇 덩이가 안 들어갔다. 데쳐서 말리면 안 되겠냐고 여기저기 물었다. 답변이 다 달랐다. 호박잎 그 따위가 뭐가 좋다고 겨울에까지 먹으려고 하냐는 답변이 제일 많았다.
시레기나 고사리 말리듯 해 보라는 사람도 있었고 폭폭 삶아야 질긴 호박잎이 맛있게 보관된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내 방식을 개척해야 했다. 폭폭 삶아봤다. 호박잎의 입성이 사라졌다. 뭉개져 보관되었다. 살짝 삶되 겉 껍질을 벗겨내고 손으로 삭삭 부벼서 삶으니 좋았다. 나중에 꺼내 먹을 때 폭 삶기로 하고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호박잎이 한 달에 열 번 잡고 석달 먹을 양을 했는데 요즘 어머니는 거의 매일 찾는다. 클 났다. 클 났어. 어머니 호박잎 국밥 그릇은 벌써 비었는데. 정말 클 났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모를 모시는 사람들(http://cafe.naver.com/mobo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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