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마음산책
이명화
“자제들이 글 외우는 소리가 유창하여 마치 병 속의 물을 따르는 것만 같으니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청나라 때 김성탄이 쓴 ‘쾌설’에서-옛날의 독서는 눈으로 읽지 않고 소리 내어 읽는 것이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서당에서 낭랑하게 목청을 돋우고 가락에 맞추어 책을 읽었고, 선생은 좌우로 몸을 흔들고, 학생은 앞뒤로 흔들며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상상해본다. 책을 읽다보면 그 가락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뇌리에 스며들고 뜻도 모르고도 글을 외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의미는 소리에 뒤따라왔다는 것이다.
그 시대의 아이들은 사랑채에서 들려오는 어른들의 글 읽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정민의 또 다른 책을 도서관에서 만났다. 바로 전날, <미치면 미친다>를 책꽂이에서 꺼내 다시 읽었고 선조들의 글을 대하면서 또 저자가 풀어낸 글을 맛들이면서 그 은근한 맛이 좋아 음미하며 읽었는데, 똑같은 저자의 책을 예서 만난 것이다. 그 이름하여 <책 읽는 소리>다.
한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모교 국문과교수로 있으면서 한시를 풀어내 소개한 이론서 <한시 미학산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 <돌 위에 새긴 생각> 등 다수의 저서를 펴냈고, 지금도 우리가 접근하기 어려운 한문학을 가까이 하면서 쉽게 풀어내어 선조들의 철학과 지혜가 담긴 그 시대의 글들을 독자들이 만나 볼 수 있게 기여하고 있다.
저자는 ‘옛 글을 읽다가 많은 생각을 했고 그런 생각들을 하나로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이 이 책이라 한다. 책 읽는 소리, 듣기만 해도 마음 속 머릿속에 청량한 소리와 울림이 생기는 것 같다. 그는 ’고전의 바다 속에는 우리가 건져낼 수 있는 구슬이 너무나 많다‘고 말한다. 그는 또 ’아무도 가지 않아 가시덤불로 막힌 길‘에서 가시덤불을 헤치고 그곳에 난만하게 피고 지는 향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가 미쳐 느낄 수 없었고 몰랐던 그 맛난 ’과실을 함께 베어 물자’고 말한다. 가시덤불 같은 길을 헤치고 그는 주옥같은 옛 글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 1부 ‘옛 글을 읽는 까닭’에서 독서와 관련된 글을, 제2부는 마음 속 옛글‘이라는 주제로 옛 사람의 내면풍경을 들여다보고, 제3부에서는 옛글과 오늘의 글과 삶을 이어보려는 생각을 담고 있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공통된 하나의 등뼈를 발견한다.
그것은 읽기와 쓰기, 그것이다. 선조들이 어떻게 책을 읽고, 그 책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그들의 글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글을 쓴다는 것,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우리의 글쓰기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아울러 선조들의 책읽기는 오늘날과 같이 보편화되어 있는 어떤 하나의 현상, 즉 지식의 획득과 정보수집에 대한 것보다 지혜를 얻는데 그 중점을 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을 읽는 안목과 통찰력이 모두 독서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독서에서 얻은 것이 내 삶에 체화되어 그들의 삶에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것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도 상통한다. 저자는 프랑스의 수학자 프랭카레라는 사람의 글을 소개한다. ‘송이버섯’에 대한 이야기이다.
“송이버섯의 생장에 좋은 조건이 계속되면 결코 포자를 만들지 않고 뿌리로만 살아가다가 노화해서 죽어버린다. 그런데 급격한 온도의 변화 등 갑작스레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제서야 포자를 만들어 계속 발전해 나가려고 한다.”심지어 송이버섯 중에는 5백년이나 뿌리 상태로만 있다가 말라죽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인간의 창조력도 결국엔 역경 속에서만이 꽃피운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우린 저마다의 창조성을 꽃피우고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혹시 5백년이나 뿌리로 살다가 말라죽는 송이버섯처럼 그렇게 포자도 만들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정신이 번쩍 나는 대목이다.
책 읽기는 곧 쓰기로 지향한다. 하지만 글은 쓴다고 그냥 써지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말대로 아무 때나 써지고 그릴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그림도 글씨도 아니다. 글을 쓰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 중요함을 다시 느낀다. 테레사 수녀는 ‘침묵 없이는 하나님을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나 일 할 수 없다’고 했던가. 명나라 진계유의 ‘안득장자언’에서 인용한 글을 적어본다.
고요히 앉아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경박했음을 알았다.침묵을 지킨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되돌아본 뒤에야 전날에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다. 문을 닫아건 뒤에야 앞서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예전에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다.선조들은 어떻게 책을 읽었는지에 대해서부터 독서의 의미와 사색, 책 읽는 즐거움, 어떻게 글을 썼는지 그 방법까지 독서에 관한 다양한 옛글을 담고 있다. 연암 박지원의 글 가운데 ‘눈뜬 장님 이야기’가 있다. 수십 년 동안 장님이었던 사람이 길 가다 문득 눈이 떠졌다고 한다. 사물이 보이게 된 그는 그 순간 제 집을 못 찾아 길에서 울고 마는데, 울고 서 있는 그에게 내려진 처방은 바로, ‘도로 네 눈을 감아라’였다고 한다.
이 우화는 곧 ‘자기 자신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말’이라 한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와 편의 속에서도 길을 잃은 것처럼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삶을 지켜보며 저자는 옛글에서 길을 모색하고 그것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 같다. 우리는 남의 눈치보고 이리 재고 저리 재고 궁리하면서 타성에 젖어 살며 대충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단 한번도 순수한 몰두와 열정 없이 ‘차지도 않고 더웁지도’ 않게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열악한 환경 속에서 포자를 터뜨리는 송이버섯이 아니라, 500년 동안 한번도 포자를 터뜨리지 못하고 뿌리로만 살다가는 무늬만 송이버섯인 그런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저물어 가는 한해의 끝에서 나와 당신이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미쳐야 미친다 - 조선 지식인의 내면읽기
정민 지음,
푸른역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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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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