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책겉스치는 눈으로 살피면, 대충 막 쌓아 놓았다고 여길 수 있는 헌책방 책탑입니다. 그러나 가만가만 돌아보면, 하나도 버릴 수 없이 소담스럽게 여기기 때문에, 차곡차곡 쌓아서 이루어진 책탑입니다.
최종규
요새 아이들은 방구석에 처박혀서 인터넷게임에만 빠진다고들 합니다만, 그래서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쓰는 말이 ‘우리 말 문화를 망가뜨린다’고도 합니다만, 아이들을 방구석으로 내몰고, 아이들이 방구석에서 인터넷게임을 할 수밖에 없도록 닦달한 사람은 바로 우리 어른들 아닐까요?
아이들이 뛰놀 골목길이 없는걸요. 아이들이 자기 머리를 추스르고 더 넓은 세상을 헤아려 볼 책을 만날 수 있는 책쉼터인 동네 새책방과 동네 헌책방이 사라지고 있는걸요.
우리 어른들은 어릴 적에 헌책방을 왜, 어떻게, 언제, 얼마나 자주 다녔을까 궁금합니다. 헌책방만이 아니라 동네 새책방에는 얼마나 자주 찾아갔을까 궁금합니다. 아니, 도서관 나들이를 하면서 책나라나 책바다에 빠져들고자 해 본 적이 얼마나 될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어른이 되어 가는 동안, 도서관이나 동네 새책방이나 헌책방을 찾아가면서 어떤 책을 만났고, 어떤 책으로 우리 가슴을 적셨으며, 어떤 책으로 여태껏 느끼지 못한 새로움을 맛보며 세상 톺아보는 눈길을 가다듬었을까 궁금합니다.
제 어린 날을 뒤돌아봅니다. 제 어린 날은 책하고는 담을 쌓은, 아니 책이 무엇인지 모르던 나날입니다. 국민학교 교사였던 아버지가 있었으나, 월부 책장사한테 사들인 전집 몇 가지 있었을 뿐이고, 이 책은 우리 형이 보라고 들여놓았습니다. 저는 마냥 골목길 놀이가 좋았고, 골목길 동무들하고 온갖 놀이를 하며, 대나무로 낚싯대 만들어 갯벌로 낚시하러 가기를 즐겼습니다(제 어릴 적까지는 망둥이 낚시를 곧잘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에 나가 낮에 밥 먹으로 잠깐 돌아온 뒤 다시 저녁까지 뛰어놀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숨바꼭질을 하며 박쥐하고 벗삼았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노라면, 집에서 먼지만 먹고 있는 전집 책이 불쌍해 보여서, 또 어머니 꾸지람을 듣기도 해서, 또 학교에서 독후감 숙제를 내야 하기도 했고, 독서부장 맡은 계집아이한테 잘 보이고 싶은 마음까지 조금 있어서, 더듬더듬 몇 가지 책을 읽었습니다.
어릴 적 동네 헌책방 추억을 떠올리자니, 그냥 “인천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헌책방이 참 많았다”는 생각 하나뿐. 어린아이한테는 책이고 뭐고는 눈에 안 들어오고 온통 놀잇감만 눈에 들어오니까요.
머리통이 조금 굵어지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헌책방이 어떤 곳인지 눈을 뜹니다. 참고서와 교재를 값싸게 사고팔 수 있는 곳이 헌책방이 아니었음을, 참고서 팔이로 돈을 버는 분들도 틀림없이 있지만, 우리 눈길이 학습지에서 풀려날 때 바야흐로 책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짐을 처음 살갗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독일말 참고서 하나를 사고 책값을 셈하던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뒷통수를 자꾸 긁어대는 무엇인가 있어서 슬쩍 뒤를 돌아보니, ‘학습지 아닌 여느 인문사회과학책’들이 책시렁에서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더군요. 흠칫 놀랍니다. 아, 지금 내가 셈치르는 이 녀석은 책이 아니구나, 진짜 책이 저기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