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인간] 일본 항복, 일주일만 빨랐더라면…

[김갑수 역사팩션 162] 3부 '열두 개의 눈동자' 편

등록 2008.12.02 14:47수정 2008.12.0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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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맨이 제대로 터져 주어야 할 텐데."

기장은 우라늄 235 원자탄을 폭탄이라 하지 않고 으레 별명으로 불렀다. 기체는 히로시마 상공에서 고도를 높였다. 기장은 승무원들을 돌아보며 기내 난방장치를 가동했다.

"히로시마 시코쿠 상공, 방열복을 착용하라."

본토 상공에는 일본 전투기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육지로부터 어떤 방공포탄도 날아오지 않았다. 이를 확인한 호위기들은 순식간에 에놀라게이의 시야에서 뒤로 빠졌다. 폭탄 투하 후 비행기가 빠져나갈 여유 공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보안경 착용"

히로시마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들이 기장의 육안에 들어왔다. 곧이어 히로시마 중심 시가지의 T자형 아이오이 다리가 나타났다. 기장은 폭탄실 문을 여는 버튼을 누르고 투하 기어를 당겼다. 직후 에놀라게이는 급강하, 급회전으로 투하 현장을 빠져나갔다. 폭탄은 투하 43초 만에 아이오이 다리 근처에 있는 시마 병원 570미터 상공에서 폭발했다.

히로시마는 순식간에 회색과 보랏빛 연기로 뒤덮였다. 버섯구름이 빨간 불기둥을 퍼트리며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높이 솟아올랐다. 이어 붉은 용암이 도심지 전체에 넘실거렸다. 하늘에서 육안으로 이를 본 에놀라게이의 승무원들은 모두 할 말을 잃은 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트루먼, 우라늄 원폭에 이어 플로토늄 원폭까지 사용

원폭 투하 후 16시간 만에 트루먼은 성명을 발표한다.


일본은 진주만 하늘로부터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몇 배나 되는 보복을 받았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 폭탄으로 우리는 엄청난 파괴력과 더불어, 놀랍고도 강화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폭탄들은 현재 생산되고 있으며 더 강력하게 개발될 것이다.

그것은 원자폭탄이다. 그것은 우주의 근원적인 힘을 동력화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일본 어느 도시에 있는 생산 시설도 더 신속하고 완전하게 제거할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그들의 항구와 공장과 통신 시설을 파괴할 것이다. 우리는 일본의 전쟁 수행 능력을 완전히 없앨 것이다. 어떠한 실수도 없다. 만약 그들이 우리의 요구를 거부하면, 하늘로부터 역사상 유례가 없는 파괴의 소나기를 맞이할 것이다.

히로시마 지하 벙커에 있었던 한 통신병은, "히로시마 전멸"이라는 메시지를 연대 본부에 타전하고 죽었다. 그러나 연대 본부에서는 대본영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히로시마 근교 구레 해군 기지에 있던 니시다 기쿠오 대위는 버섯구름을 보고 생각했다.

'시내 육군 탄약고가 폭발했나?'

그는 도쿄대학에서 원자물리학을 전공하여 '방사능 측정 연구'라는 졸업 논문을 낸 사람이었다.

일본의 군부는 원자탄이라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다가 트루먼의 성명을 듣고 나서야 모두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원자탄은 없다 모두 미국의 모략이다."

누군가 광적으로 소리치자 모두들 그의 말을 믿게 되었다. 그들은 누구도 히로시마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가장 기회주의적인 국가, 소련

일본의 항복이 예상보다 빨리 닥칠 것을 안 소련은 급히 포츠담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스탈린은 화급히 포츠담 선언에 서명했다. 물론 승전국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한편 절망에 빠진 일본 외무성에 한 가닥 희망이 날아들었다. 그동안 중재 협조 의뢰에 냉담하던 소련이 몰로토프 외상을 통해 만나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8월 8일 일본의 사또 대사는 소련 외무성을 다급히 찾아갔다. 그러나 몰로토프는 사또에게 단지 서류 한 장을 내밀었을 따름이다. 그것은 '선전포고서'였다.

독일의 패배 후 오로지 일본만 연합국과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미· 영· 중 3국이 7월 26일에 발의한 무조건 항복 요구는 일본에 의해 거부되었다. 따라서 일본 정부가 소련에 대하여 요청한 조정안은 그 기반을 완전히 상실했다. 일본이 항복을 거부함에 따라, 연합국은 소련에게 대일전에 참가함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고, 더 이상 희생자를 내지 않도록 함으로써 평화를 회복해야 한다고 제안해 왔다.

그러므로 소련 정부는 연합국에 대한 의무에 따라 그런 제안을 수락하기로 했다. 소련 정부로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일본 국민들의 위험과 파멸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뜻에서 소련 정부는 내일, 즉 8월 9일부터 일본과 전쟁 상태에 들어간다는 것을 선언한다.

일본의 침묵을 참지 못한 미국은 8월 9일 오전 나가사키에 플루토늄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일본은 마침내 8월 10일 포츠담 선언의 수락을 공표한다. 트루먼은 소련이 달라고 하던 홋카이도 대신 다른 어딘가를 줘야 하리라고 계산에 넣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항복이 일주일만 빨랐더라도 그런 골치 아픈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못내 아쉬워했다 이런 점에서 만약 일본이 일주일만 일찍 항복했더라면 소련의 참전은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한반도의 분단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역사적 가정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본 항복에 허탈해 하는 김구와 장준하

이 시간 중국 서안의 오에스에스 병영에 다나반 사령관이 곤명에 갔던 사젠트 소령의 안내를 받으며 나타났다. 장준하를 비롯한 대원들은 드디어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한반도 서해안 침투 작전을 직접 지휘하기 위해 친히 사령관이 온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마침 김구 주석도 중경에서 떠나보낼 때 한 약속대로 지청천 장군과 함께 병영을 방문 중에 있었다. 그렇다면 김구 역시 떠나는 젊은이들을 보러 온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최고 지휘관이 왔는데도 집합 명령이 나지 않는 것은 조금 이상한 일이었다. 들리는 말로 다나반 소장은 김구 주석, 지청천 사령관, 이범석 참모장과 방에서 장시간 회담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장준하는 동요 없이 국내 침투 구상을 다지고 있었다. 그의 주머니에는 일본 산 종이에 찍은 가짜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 활동 자금으로 받은 적잖은 양의 금괴도 있었다. 그는 일본제 신발을 신고 있었다.

이윽고 이범석 대장이 모습을 보였다. 장준하는 그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었다. 이범석의 얼굴에는 기쁨인지 아니면 슬픔인지, 다짐인지 또는 허탈감인지 모를 매우 복합적인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금 곤명 사령부에 한 통의 전략통지문이 입수되었답니다.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며 무조건 항복하겠다는 발표를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국내 침투 공작은 취소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습니다."

"아아, 일본이 이렇게 빨리 항복할 줄이야."

김구 주석은 한탄했다고 했다. 일본이 조금만 더 늦게 항복했더라면 비록 미군 지휘를 받기는 했지만 한국의 광복군이 참전한 것이 되고 이에 따라 한국은 전승국 지위를 주장할 근거를 얻기 때문이다.

장준하는 기쁨과 실망이 교차하는 가운데 넋을 놓고 있었다. 연합군의 일원으로 영광스러운 환국을 하겠다는 꿈이 산산이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100% 외세에 의한 독립을 의미했다. 반면 조국의 해방이 찾아왔다는 것은 어찌되었든 환희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제 무얼 하나?'

장준하가 깊은 상념에 젖어 있을 때, 누군가 뒤에서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김준엽은 환히 웃고 있었다. 그는 악수를 청했다. 장준하는 악수 대신 그의 온몸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는 데 기여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제국주의의 실상과 이에 도전한 매혹적인 한국인들이 소개됩니다,


덧붙이는 글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는 데 기여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제국주의의 실상과 이에 도전한 매혹적인 한국인들이 소개됩니다,
#트루먼 #스탈린 #포츠담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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