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전쟁 경험한 영국, 왜 자꾸 파병하나?

1970년대 영국 리얼리즘 소설 <분홍바늘꽃>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

등록 2008.12.02 10:17수정 2008.12.02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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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실에서 빌려본 소설 <분홍바늘꽃>
도서실에서 빌려본 소설 <분홍바늘꽃>이장연
도서실에서 빌려본 소설 <분홍바늘꽃> ⓒ 이장연

지난 11월 영국정부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영국군의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을 요청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며 최대 2천명의 추가파병을 놓고 고민중이라 했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되는 영국군은 현재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4100명 중 2009년 봄까지 철수한 병력에서 충당될 것이고, 현재 영국군은 아프가니스탄 헬만드주에 8100명이 주둔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부시 전 대통령과 미정부와 함께 2001년부터 '테러와의 전쟁'이란 미명하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잇따라 침공·주둔한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현 고든 브라운 총리를 위시한 영국정부와 달리, 영국민 68%가 1년 안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영국군이 철수해야 한다는 파병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작년 영국군의 이라크, 아프간 파병 주둔 비용은 약 30억 파운드에 달하고, 2001년부터 8년여간의 전쟁과 영국군 파병으로 인해 전비 누적액이 130억 파운드(20조5700억원)을 넘어섰다. 더불어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던 외국군들, 일본 항공자위대, 오스트레일리아도 전투부대, 폴란드군도 철수한다 하고 미국조차 이라크 주둔 미군을 재편하면서 병력을 철수한다고 하니 말이다.

 

이러니 미국처럼 전쟁반대 여론에 밀린 영국도,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을 획책한 동맹국이 아무리 미국이라 해도 철군의 압박을 받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영국정부는 아직 버락 오바마가 요청도 하기 전에 영국군의 아프가니스탄 추가 파병을 설레발치며 준비하고 있다.

 

왜 그럴까? 왜 영국은 자국의 군대를 해외로 자꾸 파병하려는 것일까? 과거 오만한 식민제국주의 망령 때문인가? 자국의 이익에 관련된 석유자원을 미국처럼 독차지하려는 속셈인가?

 

특히 세계경제 공황 후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의 군군주의 나라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연합국 사이에서 일어난 참혹한 제국주의 패권전쟁인 제2차세계대전 중 독일군으로부터 영국 본토까지 공습당해 런던 등 주요도시가 폐허가 되고 4만3000명의 사람들이 전역에서 죽임을 당한 바 있는, 아픈 역사를 가진 영국은 왜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지, 전쟁을 되풀이 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1970년대 영국 최고의 리얼리즘 작가라는 평판을 받은 작가 질 페이턴 월시(Jill Paton Walsh)의 소설 <분홍바늘꽃>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서 내내 맴돈 생각과 질문들이다.

 

1940년 가을과 겨울 사이 나치의 런던 대공습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열다섯 살 소년 빌과 캐나다로 피난을 가려다 도망친 줄리라는 여자아이가 만나 전쟁통에서 겪는 고된 삶과 백일몽과 같은 짧은 사랑이야기를 사실적인 묘사와 구체적인 설명으로 풀어낸 소설을 읽으면서, 전쟁이 불러온 죽음과 파멸 속에서 희망과 사랑을 역설하는 이 소설이 왠지 너무나 감상적이고 낭만적이란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세계대전 한복판에서 아이들이 꿈꾸는 자립의 희망과 생존의 기쁨에 감동 받기보다, 이런 전쟁의 고통과 아픔을 겪은 영국과 영국민은 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폐허로 만들고 민간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가 이 소설은 30년 전 전쟁의 리얼리티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과거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데 온 신경을 썼을 뿐 그 비참한 상황을 애틋한 사랑으로 덧칠해 미화해 버리는 듯싶다. 전쟁터에서 꽃피는 전우애와 사랑 같은 그런 상투적인 소재들로 말이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쓸 당시 전쟁 이후 재건을 이뤄내고 영국민들의 아픔을 치유할 뭔가를 불어넣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참으로 곤욕이 아닐 수 없다. 제2차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된 런던의 모습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의 수많은 민간인 마을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런던에 엄청난 양의 소이탄과 고폭탄을 폭격한 나치군과 최첨단무기로 무장해 아프가니스탄-이라크를 무력침공한 영국군의 모습이 겹쳐졌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을 만하지만 지금 현실과 괴리된다는 말이다. 아무튼 왜 인간은, 국가는 잘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는지 정말 모를일이다.

덧붙이는 글 | - 분홍바늘꽃(원제 Fireweed) / 질 페이턴 월시(지은이), 햇살과 나무꾼(옮긴이) / 양철북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12.02 10:1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 분홍바늘꽃(원제 Fireweed) / 질 페이턴 월시(지은이), 햇살과 나무꾼(옮긴이) / 양철북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분홍바늘꽃

질 페이턴 월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양철북,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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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금나무는 전쟁을 모릅니다

#분홍바늘꽃 #영국 #파병 #아프가니스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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