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잡화점 청년의 갑작스런 등장(?). 이 사진을 찍고 난 다음 제대로 한 컷 다시 찍었다.
조경국
맑게 웃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을 보다점심식사를 하고 사메의 시장을 둘러보았다. 시장은 제법 규모가 컸다. 볼거리도 많았고 먹을거리도 많았고,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는 곡식을 파는 가게에서 원두를 팔고 있다.
사메에서 딜리로 가는 길은 한창 포장 중이었다. 무너진 도로를 보수하고 있는 것이다. 콜타르를 찌그러진 드럼통 안에 넣고 끓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콘크리트를 버무리는 작은 기계도 보았다. 우기가 코앞인데 이제야 보수를 하면 우기에 다리 도로가 무너지거나 떠내려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산간마을에서 한 시간쯤 머물면서 돌아보기로 했다. 차를 타고 휙 지나쳐가는 것과 내려서 그 땅을 걸어보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는 것은 전혀 다르지 않나. 산은 가파르고 땅은 척박해 보인다. 그 산길을 소년이 말 두 마리를 이끌고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어미 말과 망아지다. 소년은 걷다말고 낯선 사람들을 돌아보고, 망아지는 어미 곁으로 더 바싹 다가가고.
마을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 역시 경계하는 기색 하나 없이 사진기 앞에 모여든다. 낯선 사람들을 향해 맑게 웃어주는 아이들에게서 희망이 보인다는 생각을 한다. 밝은 미소 속에서 절망을 발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이 마을에 골고다가 있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이 서 있다. 성모마리아 상이 있고, 도마뱀 조각이 있고, 하얀 들꽃이 피어있다. 꽃 위에는 벌레 한 마리가 내려앉아 향기를 탐하고 있다. 낡은 성당이 있고, 전통 양식의 가옥에 나무로 만든 십자가상이 있다. 가톨릭과 토속신앙은 어떻게 접목되어 이들의 일상에서 나타날까, 궁금해진다. 돼지를 죽이고 돼지피를 뿌리는 것만이 토속신앙의 전부가 아닐 텐데 말이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교실 하나가 있다. 책상과 걸상 위에는 먼지가 앉아 있고,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있다. 예전에 사용했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는 것들을 보면 예전에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사람들의 온기가 사라진 것들은 처음부터 온기가 깃들지 않았던 것들보다 더 쓸쓸해 보인다. 어째서 그럴까?
능선을 따라 난 길을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우리가 자동차를 타고 달려온 길이 보이고, 달려갈 길이 보인다. 말을 이끌고 말 등에 짐을 싣고 능선 길을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산을 넘어가는 것일까, 아니면 산 위의 어느 집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한참동안 지켜보지만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보이지 않는다. 길은 길로 이어져있으므로 길 끝에 서기 전에는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법 아니던가.
이 마을에서 여러 날 묵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는 일 없이 그냥 산 위에 앉아서 아래만 내려다봐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자동차에 타고, 길 위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