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3일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을 찾아 기자들과 즉석간담회를 가졌다.
청와대
이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한 <한겨레>와 <조선>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주지하다시피 두 신문사는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가치관이 상반된 언론사들입니다. 그럼에도 두 신문사 모두 '오프더레코드' 논란에 휘말린 것은 예사로운 현상으로 볼 수 없습니다.
비판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권력의 언론 통제는 매체의 성향과 상관없이 무자비하게 진행되는 반면, 대다수 기자들은 정부 관계자와의 인간적 정리에 이끌려 스스로 '알 권리'를 뭉개는 우를 범하는 게 아닐까요?
후보 시절 그대로, 이 대통령의 언론 버릇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 중인 16일(현지 기준) 주미 특파원단과 오찬 간담회에서 특정언론사를 거론하며 불편한 속내를 드러낸 일도 있었습니다.
원래 이 간담회는 대통령의 모두발언과 특파원 5명의 질문을 받는 것으로 '사전 각본'이 만들어졌지만, 예상외의 질문이 쏟아져 대통령도 준비되지 않은 발언을 많이 한 모양입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부정적인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선거 때는 무슨 말을 못하겠냐"고 말했다가 "그러면 대운하도 같은 차원이냐"는 또 다른 질문에 대통령이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한 걸 보면 그렇습니다.
'주미 특파원'이라는 자리는 언론사 선임기자가 간부가 되기 전에 맡습니다. 춘추관 기자실에 계속 머물며 권력 핵심부로부터 정보를 빼내야 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처지와도 다릅니다. 십수년 동안 별의별 취재원을 상대해온 고참 기자들이 어쩌다 한 번 보는 대통령을 봐주지 않는 게 당연할지 모릅니다.
<경향신문> 김진호 특파원은 대통령에게 "최근 북한의 군사분계선 제한·차단 발표에 대해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말했고, '필요하다면 임기 중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여러 번 만날 용의가 있다'는 말도 했는데 둘 중 어느 쪽이 정부의 대북정책이냐?"고 물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그게) <경향신문>의 뜻인지, 국민의 뜻인지 약간의 혼선이 있다"며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 핵없이 통일하는 것이 한국의 국익"이라는 '모범 답안'을 내놓았습니다.
김 특파원이 18일자 신문에 쓴 것처럼 한반도 비핵화와 통일은 굳이 대통령이 확인해주지 않아도 될 목적지이고 문제는 어떻게 가느냐는 것인데, 대통령은 답을 내놓지 않고 엉뚱하게 특정신문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셈입니다.
김 특파원은 "땡전 뉴스'가 그리우시냐"고 비꼬았습니다. 나쁘게 해석하면, 자신의 질문에 불성실한 답변을 한 취재원에게 <경향> 기자가 지면을 통해 분풀이를 한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어쨌든 <경향>을 제외한 언론사들은 이 일이 대통령과 <경향>의 문제라고 생각했는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인터뷰 답변을 한 취재원이 대통령이 아니라면 다른 언론들이 모른 체 했을까요?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조금이라도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그런 유치한 질문하지 마라"며 기자들을 무안하게 만들곤 했는데 그 시절의 버릇을 아직도 못 고친 듯 합니다.
그럼에도 오만한 권력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 수 있는 존재는 깨어있는 언론이라고 믿습니다.
3년 전 제도권 언론들은 '황우석'이라는 과학계의 권력에 놀아나 조작된 논문의 진실을 밝히려는 공익 제보자들을 오히려 곤경에 빠뜨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처럼 언론이 권력에 코드를 맞추려다가 독자들의 믿음을 잃는 일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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