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츠(Don Kurtz)가 제공한 루소의 초상 .
Don Kurtz
루소는 신고전주의 전통에 속해 있었던 스승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7세기 네덜란드 풍경화가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리처드 파크스 보닝턴(Richard Parkes Bonington, 영국, 1802-1828)이나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 영국, 1776-1837)과 같은 영국 화가들의 작품을 광범위하게 연구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화풍을 계발하기도 하였습니다.
1933년 퐁텐블로에 방문한 루소는 바르비종의 계곡에 정착하여 정기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 곳에서 작업하고 있던 자연주의 화가들, 장 프랑스와 밀레(Jean Francois Millet, 프랑스, 1814-1875)와 쥘 뒤프레(Jules Dupré, 프랑스, 1811-1899), 카미유 코로(Camille Corot, 프랑스, 1796-1875), 찰레 프랑스와 도비니(Charles-François Daubigny, 프랑스, 1817-1878) 등과 교류하며 작품활동을 함께 하였습니다.
1848년의 영국혁명 이후, 살롱에서도 프랑스 풍경화에 있어서 루소를 중요한 화가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1855년에 있었던 세계 박람회(the Universal Exposition)에 출품되었던 그의 작품이 알려지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였으며, 1867년에는 그 박람회에 미술 심사원 의장으로 초청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해 12월 12일, 루소는 마침내 그가 살던 바르비종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과 작품들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오늘날 충분히 재평가를 받을 수 있는 화가라 할 수 있습니다.
바르비종의 동양적인 여유로움과 평화를 사랑했던 루소 이 가운데 앞에서 소개한 적도 있는 코로의 풍경화는 은회색의 부드러운 색조속에 평화로운, 마치 추억의 베일에 싸인 듯 시정높은 자연의 정감을 느끼게 합니다. 한편 밀레는 코로에 비해 한층 더 사실주의적인 화가로 농민생활을 전원풍경과 함께 조화롭게 담아냈습니다. 밀레의 그림은 어떤 가식도 없거니와, 깊은 인간적인 공감과 종교적인 경건함이 베어 있습니다. 이 기회에 앞에서 소개했던 두 화가들의 그림들도 함께 비교해 감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루소의 그림과 초기 풍경화는 자연을 거칠고 불규칙하며 난폭한 힘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런 작품은 프랑스의 유명한 낭만파(Romanticism) 화가와 작가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고요하면서도 이상적인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풍경화라는 평가도 받았으며, 잘 짜여진 직물같은 구도와 섬세한 붓질은 인상주의(Impressionism)의 전조가 되기도 합니다.
위 코로나 밀레의 그림에 비하면 루소의 작품은 퐁텐블로 숲 어귀의 풍경을 계절에 따른 빛의 변화와 그 변화의 오묘한 색채를 섬세하면서도 정감있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우주 속 어머니의 대지 안에 들어와 있는 듯, 태아로 되돌아가 어머니의 양수에 들어와 있는 듯, 동양적인 여유로움과 평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테오도르 루소 그림의 특징을 들자면, 위에서도 볼 수 있는 숲 풍경, 특히 퐁텐블로 숲 풍경이나 농촌의 아름다운 정경을 주 소재로 담아내고 있으며, 코로와 마찬가지로 그의 화폭 안에서는 자연이 주인공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자연의 살아 생동하는 느낌을 부드러운 빛과 평온한 색채로 표현하였다는 점입니다. 오늘의 아래 그림에서도 그런 독특한 분위기를 잘 묘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