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설산 주봉 생명의 호수의 풍경. 만년설을 타고 내려온 빙하가 호수까지 닿아있다.
변훈석
메리설산 얼음호수. 현지어로 '나이친라춰'라 불리며, 메리설산 주봉인 카와커보의 생명의 근원이라 여겨지는 호수이다. 주변의 토사 유입으로 인해 빙하가 녹아 내려 담아진 호수의 물빛이 탁해 보이긴 하지만 거대한 암벽 전체를 새하얀 빙하가 감싸고 빙하가 뿜어내는 만년설의 정기를 품은 새하얀 물들은 거대한 암벽 사이사이 아름다운 자태로 흘러내리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어쩌면 개척되어 있는 길로는 메리설산의 가장 깊숙히, 설산의 신에 가장 가깝게 다가설 수 있는 곳일 듯하다. 물론 설산의 저 뒤편에도 4~5가구가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 있긴 하지만... 해발 3850m. 이 곳에도 매년 여행자들의 실종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작년에만 해도 이 곳에서 프랑스인 여행객과 중국인 여행객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메리설산! 그 신비로움을 인간들에게 과시라도 하려는지... 아마도 호수 주변의 빙하에 올라서는 부주의로 거대한 크레파스 속으로 빠져버린 게 아닐까?
5色 5景 메리설산 가을 트레킹④ - 샹그릴라를 만나다!메리설산 위로 휘영청 보름달이 떠올랐다. 환한 달빛은 머금은 메리설산의 만년설은 맑고 깨끗함 그 이상의 순결함이 묻어난다. 형용할 수 없는 그 고귀함은 밤이든 낮이든 그저 바라만 보게 할 뿐이다. 머릿속의 모든 잡념들, 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힘겨운 짐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새 그것들에게 벗어나 나만의 샹그릴라를 만들어낸다.
3일차 트레킹. 짧고 굵은 메리설산의 트레킹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어젯밤 여흥이 과했던 탓일까? 신성한 기운을 받아 가뿐해야 할 몸이 꽤 무겁게 느껴진다. 어쩌면 가장 신성한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하는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해발 3650m에 위치한 신의 폭포. 메리설산 순례의 종점이자 인간의 발걸음이 닿을 수 있는 가장 신성한 곳이다. 폭포의 물은 성수(聖水)로서 자신의 악업을 정화하고 복을 기원하는 신의 축복을 의미한다.
하위뻥 마을을 통과해 원시산림숲으로 평탄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태곳적 자연이 그대로 묻어나는 원시림 속에는 햇빛조차 들지 못하는 곳에서 오랜 시간을 그 속에서 살아온 이끼들과 하늘과 맞닿을 듯한 기세로 곧게 뻗은 아름드리 고목에서 자연의 맑은 정기와 함께 메리설산을 신으로 받들며 살아가는 티벳탄들의 신앙 또한 가득 묻어난다. 메리설산 최고의 성지로 가는 길은 이렇듯 절대 평범하지 않으면서도 종교적인 엄숙함이 길 위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