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회화록>은 <창작과 비평> 편집인인 백낙청 교수가 지난 40여 년간 얼굴을 마주한 당대 지식인들의 사유와 인격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40년간 우리 사회가 어떤 지적 사유와 논쟁을 거쳐 왔는지 알 수 있다.
논쟁이 없는 사회는 죽은 사회다. 논쟁이란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다. 우리 사회가 논쟁이 없다고 하는 이유는 일제강점기와 독재권력이 사상과 사유를 획일화시켰기 때문이다. 논쟁은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을 설득시켜 가는 과정이며, 또한 상대방 주장을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과학방법론으로 맞다면 인정해주는 과정이다.
우리 사회를 논쟁이 없는 사회라고 한탄하지만 40년 창작과 비평에는 분명 논쟁이 있었다. 사유와 사상이 다른 이들이 인간과 사회, 역사, 민족, 정치를 두고 치열한 지적 논쟁을 했기에 창작과 비평은 지금도 뭇 사람들에게 지적 자극을 주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40년 우리 지성사를 아우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말했다. "남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은 저 나름으로 그런 진리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글'이 아니라 '말'을 담았기에 읽는 독자는 좌담과 대담 자리에 자신이 앉아 있다는 생생한 감동을 경험할 수 있다. 사상과 사유의 영역과 철학이 달라도 그들은 논쟁했고, 무시하지 않았고, 서로를 설득하려고 했다. 자신의 철학과 사상은 지키려고 하지만 상대에게는 자신의 사유 영역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대학 들어가서 40년 우리 지성사의 획을 그었던 이들이 어떻게 논쟁해왔는지 살피고, 치열한 논쟁을 배워 봄도 좋은 일이다.
수능을 잘 보고 원하는 대학과 학과에 들어가서 과연 교수와 논쟁할 수 있는가?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 조선 성리학의 두 거두인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 편지를 통하여 지적사유논쟁을 엮은 책이다.
오늘날로 치자면 국립대 총장격인 퇴계 선생이 나이가 한참 어린 26살 연하의 고봉이 어서로를 존중하면서 자기 사상을 상대에게 설득시키고 자기 생각이 부족하면 인정하는 놀라운 장면들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퇴계는 머리를 조아리며 '제 견해가 잘못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겸손을 넘어 고봉의 사상과 지성이 퇴계를 앞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퇴계는 자신과 견해가 다를지라도 논리와 타당성이 있다면 고봉의 지적 사유를 인정했다는 의미다. 지식과 사상이 발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늘날 자신의 제자가 '스승님 견해가 잘못되었습니다' 라고 논박할 때 스승은 어떻게 대답할까?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지적 논쟁이 없지만 교수와 교수 사이에도 이념적 틀이 다르면 지적 논쟁이 성립되기 어려운 시대다. 사상과 철학이 천박한 시대이다.
"옛 배움을 익히고 연구해 처음 세웠던 뜻을 저버리지 않고자 합니다만, 잡다한 일이 저를 얽어매어 종일 겨를이 나지 않습니다. 또 속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곳도 없으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고봉)
"언제나 빼앗을 수 없는 의지와 꺾을 수 없는 기개와 속일 수 없는 식견을 지녀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학문의 힘을 나날이 담금질한 뒤에야 발꿈치가 단단히 땅에 붙어서, 세속의 명예나 이익 그리고 위세에 넘어지지 않기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퇴계)
배움과 연구를 통해 학문을 알아가고자 했지만 벼슬길에 들어선 고봉은 잡다한 일로 학문을 알아가는데 안타까움을 말한다. 어디 배움을 구할 때가 없다고 말한다. 세속 일이지만 나라일이고, 나라 일을 하려고 하는데 잡다한 일이고, 학문을 해야 할 시간을 빼앗긴다는 안타까움에 퇴계는 학문은 나날이 담글질해야 하는 일이라 한다. 담금질해야 세속의 명예와 이익에 넘어지지 않는다 말한다.
조선시대나 이 시대나, 고봉과 퇴계나 우리 세대도 마찬가지다. 세속의 이익과 명예는 끊임없는 도전이다. 우리 시대 대학은 이미 학문을 잃어버렸다. 초등학교부터 학문은 관심대상이 아니다. 세속의 명예와 이익에 학문이 천박해졌다. 학문을 처세의 방편으로까지는 삼는 시대다.
"저는 늘 말하기를 처세가 어려운 경우 나는 내 배움이 완전하지 못함을 걱정할 뿐이다. 내 배움이 만약 완전하다면 반드시 처세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했습니다." (고봉)
"이른바 미진했다 함은 다름이 아니라 학문을 이루지도 못했으면서 자신을 높이고, 시대를 헤아리지 못했으면서 세상을 일구는 데에 용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패한 까닭이니, 큰 이름을 걸고 큰 일을 맡은 사람은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퇴계)
큰 이름을 걸고 큰 일을 해야 할 사람이 학문을 이루지 못하고 큰 일을 도모하는 우리 시대다. 퇴계는 학문만이 아니라 정치를 알고 있다. 정치란 처세가 아니라 학문이 바탕이며, 학문 없는 처세가 나은 정치는 비극임을 갈파한다. 정치 뿐만 아니라 대학 삶에서 처세가 아니라 진정한 학문을 하는 생활이 아니라면 결국은 빈껍데기만 안고 졸업할 수밖에 없다. 그럼 비극이다.
퇴계와 고봉, 대사성과 급제한 신출내기, 26살 차이, 이기이원론과 이기일원론 지적사유 사이가 있었지만 그들은 13년간 편지를 통해 생각을 나누었다. 우리 시대는 이런 논쟁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논쟁이 있어야 학문도 발전하고 정치도 발전한다. 없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논쟁을 시도하면 된다. 퇴계와 고봉이 논쟁했던 13년간의 '조선'이 부럽다
<대화> 리영희 ㅣ 한길사 펴냄
진실된 삶을 살아온 자는 당당하다. 부끄러움이 없다. 거짓된 삶을 살아온 자는 항상 거짓되다. 진실 앞에서 서면 추해진다. 당당한척 하지만 가장 추락한 자신을 보여준다. 당당한 삶을 살아온 한 사람이 있으니 '리영희'다.
<전환시대의 논리>로 1970년대 청년들에게 진리를 향한 외침을 부르짖게 했다. <우상과 이성> <분단을 넘어서> 따위 그가 내 놓은 글들을 진실을 향하여 당당한 삶을 추구했던 이들에게 지적 사유를 하게 했던 리영희 선생이 2005년 3월에 임헌영과 나눈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을 대담형식으로 담은 <대화>를 내 놓았다.
<대화>를 읽어가면서 든 생각은 사람은 대화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진실하지 않으면 대화할 수 없다. 자신을 다 드러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을 반추하는 대화는 녹록하지 않다. 가식을 담을 수 없다. 리영희 선생의 <대화>는 지식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이 무엇인지 말한다. '전문가'가 아닌, 시대가 고민하는 것을 자신과 일체시킨 삶이었다.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말한다.
"나의 삶을 이끌어준 근본이념은 '자유와 책임'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는 믿음이었다."(본문 7쪽)
전문지식을 자본에 팔고, 권력에 팔고, 명예에 파는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그 지식을 팔아 권력을 만들고, 스스로 기득권에 들어가 결국 지식장사꾼으로 살아갈 뿐이다. 리영희는 자신을 지식장사꾼이 아니라 자유와 책임으로 시대의 고민과 가치가 무엇인지 깨닫기를 원했고,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한다.
지식인은 지식장사꾼이 되면 그는 지식을 배반한 자가 된다. 지식을 배반한다면 그 지식은 자신을 죽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죽인다. 리영희가 살았던 대한민국은 자유를 통제했고, 자유를 향한 외침을 탄압했다. 그는 그런 환경을 '반인간적 환경'(8쪽)이라 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닌 세상은 죽은 세상이다. 죽임이 난무하는 세상은 삶이 가치가 없다. 인간과 자유, 평등과 진실은 거짓될 뿐이며, 기득권에 항거하는 사악한 존재일뿐이다.
살펴보면 요즘 책들이 아니다. 멀게는 1991년(<하나님이냐 돈이냐>)에 나온 책에서 지난 해(<백낙청회화록>)에 나왔다. 자본에 진리를 팔아버린 기독교와 지적 논쟁이 사라져버린 대학 사회에서 23년을 앞서 살았던 사람이 23년 후에 12년 결실을 맺고자 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읽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2008.11.13 11:08 | ⓒ 2008 OhmyNews |
|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
김영봉 지음,
IVP, 2003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