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릇노릇 철판에서 구워내는 빵이 꽤나 먹음직스럽다.
노준형
서라벌 찰보리빵 가게는 지난 2005년 3월에 문을 열었다. 문화유산해설사, 문화유적정화 사업 등 노인 일자리 창출 사업을 하고 있던 경주시니어클럽이 새로운 사업을 찾던 중 경주의 찰보리로 빵을 만들어 팔기로 한 것. 마침 경주역 앞에 목 좋은 자리가 생겨 바로 계약에 나섰다. 빵 굽는 기계도 일본 식품박람회에 다녀온 뒤 좋은 곳으로 구비해 놓았다.
그러나 문제는 빵 굽는 기술. 직원 중 누구 하나 빵 전문가는 없었다. 책 보고 빵을 만들 수도 없는 일. 다행히 인근 서라벌 대학 호텔 조리학과 교수와 현대호텔 제과제빵장 등이 도움을 줘 무사히 문을 열 수 있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그동안 맛에 투자한 결과였다. 이 때문인지 지금 경주역 앞에는 찰보리빵집 가게가 다섯 개나 더 생겼다.
찰보리빵은 경주 건천에서 전량 계약재배하는 찰보리로만 만든다. 찰보리 반죽에 단팥 고명을 넣어 구운 찰보리빵은 무농약 무방부제 식품이다. 찰보리의 고소함과 찰진 씹는 맛, 단팥 고명의 은근한 달콤함을 느낄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맛이 미묘하게 다른데, 보통 구운 지 하루 정도 지나야 촉촉하고도 찰진 찰보리빵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방부제를 전혀 쓰지 않아서 상하기 쉬워 판매가 제한적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백화점 등에서 제품을 팔겠다는 사람이 나섰지만, 유통기한이 짧아서 성사되지는 못했다. 서라벌 찰보리빵은 인터파크 희망소기업몰과 직접 택배 주문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서라벌 찰보리빵은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태어났지만, 그 방식은 좀 다르다. 지원책 중심의 일자리 늘리기 사업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수익을 내고 운영을 해 나가는 자립형 사업이다. 그렇다고 이익 증대에만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인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판매가 부진해도 일손을 놀리지 않는다. 빵을 계속 구워야 할머니들에게 임금을 지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팔지 못한 찰보리빵은 지역 복지시설에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다. 또한 수익은 노인복지와 문화사업을 위해 사용한다. 노인 일자리 창출과 지역사회 기여,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경주시니어클럽은 찰보리빵 사업 외에도 문화유산해설사 등 12개 사업으로 노인 500여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2003년부터 시작한 문화유산해설사는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신라역사와 문화유적에 대해 설명하는 일을 하는데, 지역 노인들을 선발해서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