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기를 살았던 신영길 박사

최대 장서가로 기네스북에 올랐던 신씨를 만났다

등록 2008.11.10 10:36수정 2008.11.1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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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에서 포즈를 취해준 신영길 박사 - 오른쪽 책장 밑  원고는 신박사가 쓴 원고지다
서재에서 포즈를 취해준 신영길 박사 - 오른쪽 책장 밑 원고는 신박사가 쓴 원고지다오문수
서재에서 포즈를 취해준 신영길 박사 - 오른쪽 책장 밑 원고는 신박사가 쓴 원고지다 ⓒ 오문수

 

장서 55200권을 소장해 1995년 기네스북에 올랐던 신영길 박사를 만났다. 현재 85세인 그는 순천 조례동에서 부인 김정자씨와 함께 글을 쓰며 남은여생을 보내고 있다. 해방과 더불어 남들이 부러워할 공직 생활을 했지만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광양군 진월면 마룡리에서 태어난 그는 일제 치하 미술시간에 태극 그림을 그린 것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의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낙인 찍혀 상급학교 진학이 좌절됐다. 철도국에 공채로 입사한 신씨는 순천철도국에 배속됐고 해방과 더불어 여수건국준비위원회(1945.8월) 서기를 맡았다.

 

전라남도 경찰학교 특별과에서 1등을 한 그는 각 도에서 5명씩 차출되는 인원으로 뽑혀 종로경찰서에 배정된 후 상해임시정부 요인들이 계시는 경교장에서 경호 임무를 맡았다. 당시는 경찰 정복이 없었고 팔에 완장만 찼다.

 

왜 서울로 차출됐는가를 묻자, "1946년 4월부터 전국에 콜레라가 만연돼 서울에서도 시체가 하루에 수백 명씩 나오고 치안이 불안해진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당시 72세 쯤의 백범 선생은 2층에서 머물고 젊은 신씨는 백범 선생의 등과 팔 다리를 안마해 드렸다.

 

그는 그 당시에 대해 "독립운동가로서는 그분을 덮을 사람이 없었지만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반대한 점이 아쉽다"며 "당시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신탁통치가 논의되고 있었고, 36년 동안 일제 치하에 있었는데 또다시 5년 동안이나 신탁통치를 받아야 하는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 자택에서 집필 중이던 당시 모습
서울 자택에서 집필 중이던 당시 모습신영길
서울 자택에서 집필 중이던 당시 모습 ⓒ 신영길

 

여수로 돌아와 신월동 파출소 소장으로 근무할 당시 겪은 국군 제14연대의 반란사건은 참담한 경험이었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주경야독으로 공부한 그는 1950년 4월 제1회 고등전형고시 행정과에 합격했다.

 

경찰을 그만 둔 그는 1952년 7월에 제2대 대선시 이시영, 조병옥 후보 선대위전남동부지구선전부장을 맡으며 야당인 민주당과 인연을 맺었고 또다시 시련이 시작됐다. 1955년 민주당 창당주비위원회위원겸 전라남도당 선전부장일 때 목포에 가면 당시 목포 선전부장이던 김대중씨가 사회를 보고 신씨는 유세를 하기도 했다.

 

제3대 대선시 민주당 대통령후보 신익희, 부통령후보 장면씨가 출마했을 적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대선구호는 신씨가 고안했다. 계속된 야당생활은 경찰의 감시와 6회의 옥고와 5회의 중앙정보부 연행으로 인한 고문 때문에 복숭아 뼈가 부러져 오른발을 못 쓰는 장애인이 돼 지팡이를 짚고 외출한다.

 

1960년 외자청 주사공채시험에 합격한 그는 외자청, 경제기획원, 재무부, 대통령비서실 등에 근무했지만 계속 주사직급을 면하지 못했다. 요시찰대상 낙인이 찍혔기 때문이다. 주사직에 비애를 느낀 그는 1967년에 금융계로 자리를 옮겨 주택은행 지점장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신씨의 인생에 전환점을 이룬 것은 성재 이시영 선생과의 만남이었다. 공직에서는 출세를 못할 상이니 전기서적이나 귀중문서 지도 등의 수집과 집필이 연분이라는 가르침에 역사서적, 일제의 침략서적, 각종 지도, 국경관련 도서 등 7만여 권을 수집 소장하게 돼 기네스북에 올랐다.

 

 1956년 제3대 대선 당시 신영길 박사가 고안한  민주당 선거구호로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가 보인다.
1956년 제3대 대선 당시 신영길 박사가 고안한 민주당 선거구호로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가 보인다.오문수
1956년 제3대 대선 당시 신영길 박사가 고안한 민주당 선거구호로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가 보인다. ⓒ 오문수

 

정치인과 경제부처 공직생활, 금융인 등으로 근무하며 끊임없이 언론활동을 계속하여 국토회복과 대마도, 간도, 독도에 관한 논문을 비롯한 505편의 시사칼럼과 14권의 책을 저술했다.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뭡니까?"하고 묻자 "책을 고향에 기증하지 못하고 광운대에 기증한 것"이란다. "당시 여수대 총장에게 장서를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전하자 흔쾌히 응하고 관계자들이 서울자택까지 방문해 자료를 조사해 갔는데 내부사정으로 취소됐다"고 전했다.

 

그 후 교분이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 초청해 좋은 칼럼만 쓰지 말고 국정에 대한 어드바이스를 요청해 자료를 보냈을 때 당시 문교부 장관이던 박영식씨와 알게 됐다.  장관직을 그만둔 박영식씨가 총장으로 있던 광운대에서 기증을 요청해 와 5톤 트럭 다섯 대 분량의 서적을 실어갔지만 일부만 전시되고 있어 속상하다고.

 

역사학자로서 하고 싶은 말 

 

 신씨가 1954년 전국한시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한 한시로, 휴전직후 이산가족의 아픔을 그린 시이다.
신씨가 1954년 전국한시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한 한시로, 휴전직후 이산가족의 아픔을 그린 시이다.오문수
신씨가 1954년 전국한시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한 한시로, 휴전직후 이산가족의 아픔을 그린 시이다. ⓒ 오문수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단계가 있는데 한꺼번에 몇 계단을 뛰어 넘으려고 한다. 뉴라이트가 역사 교과서를 극우쪽으로만 가는 것도 안 되고 너무 지나치게 진보적으로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가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데 정당의 이익만 쫓아 지나치게 싸운다. 우리가 하는 일이 역사의 한 단면인데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 후손에게 도움이 된다.

 

독도문제는 일본사람이 말을 할 수가 없다. 신라 때부터 우리 땅을 을사보호조약이후 시마네현 조례에서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나는 대마도와 간도 녹둔도가 우리 땅이라고 논문을 발표했다.  대마도는 우리나라가 먼저 우리 땅이라고 주장 했어야 하는데 위정자들이 역사의식이 없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우리나라가 반신불수가 됐다. 그의 회군으로 고구려 땅을 회복할 기회를 잃었고 하나의 불교 사상으로 뭉쳐있던 고려가 유교를 채택해 노론 소론 남인 북인의 끊임없는 당쟁의 영향으로 국력이 쇠퇴해져 일제에게 당한 것이다.

 

친일파와 민족반역자 문제도 일제시대 면서기 면장만 했다고 친일파는 아니다. 당시는 대지주에게 농토를 다 빼앗겨 자식들이 보통학교를 졸업해 출세하는 것이 커다란 영광이었던 시절이다. 일제시대 도지사 이상인 사람들이나 총독부에 근무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송병준 같은 역적은 처단해야 마땅하지만 선의의 피해자는 구분해야 한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첫째, 책을 좀 읽어라. 둘째, 매스미디어를 너무 믿지 말라. 셋째, 전공여하를 불문하고 우리국사를 반드시 읽어라. 마지막으로 귀중한 시간을 허송하지 말라.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 연세에 어떻게 그렇게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는가를 묻는 질문에 신씨는 날짜를 정확히 찾아내지 못하면 글을 쓰지 않는 게 자신의 원칙이란다. 현재 398쪽 짜리 여수시사를 집필 중인 그는 "앞으로는 나이도 있어 장편을 안 쓰고 단편이나 칼럼만 쓸 예정"이란다.

 

신영길 박사의 건강과 우리사회에 대한 기여를 빈다.

덧붙이는 글 |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2008.11.10 10:36ⓒ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신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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