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화원>의 한 장면.
SBS
최근 브라운관에 사극 열풍이 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그 중심에는 역사적 사실과 실존인물이라는 최소한의 밑바탕에 작가의 상상력을 더하는 팩션(faction)형 사극이 자리 잡았다. 역사적 고증에 충실한 기존의 정통사극과 달리 팩션사극은 역사 속에 현대적 감각과 재해석을 무리 없이 덧씌울 수 있어, 트렌디 드라마를 즐겨 보는 젊은 시청자 층과 기존의 정통사극을 즐겨보는 장년층까지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모아 안정된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반면 팩션사극에는 항상 역사왜곡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팩션사극에 역사왜곡 논쟁이 빠질 수 없는 이유는, 첫째로 역사적 고증에 필요한 사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주몽>이나 <바람의 나라> <태왕사신기>같이 삼국시대, 혹은 그 이전의 시대를 그린 사극은 연대가 높아 사료가 유실되거나 혹은 지리적 여건 때문에 고증에 필요한 사료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또 연대가 비교적 가까운 조선시대를 그린다고 해도 의녀(대장금), 기생(황진이), 내시(왕과 나), 화원(바람의 화원)같이 당대에 주목받지 못했던, 천대받던 직업을 가진 주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의 경우 마찬가지로 만족할 만한 사료가 남아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조선 3대 풍속화가로 이름을 떨쳤던 신윤복조차도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그 이름 석 자를 찾아볼 수 없고, <근역서화징>에 나오는 두 줄의 기록이 유일하다 할 정도이니 말이다.
둘째로는 극적 구성과 흥미 유발에 있다. 소설이나 드라마는 모두 그것을 보는 사람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 독자(혹은 시청자)로 하여금 흥미를 유발하게 만들고 그것에 빠져들게 해야 하는데, 기존의 역사적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히 재미있지 못하다. 그래서 작가는 역사를 꼬거나 비틀어서, 혹은 상상력을 더해 허구적 사건이나 인물을 창조해 끼워 넣으면서 극에 재미를 더하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관심 증폭, 긍정적 영향 아닐까예컨대 <이산>에서 의빈 성씨가 도화서 다모가 아니었다면 정조를 도와 그림과 관련한 음모와 사건에서 실마리를 찾아 해결할 수 있었을까? <허준>에서 스승 유의태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런 감동과 재미가 있었을까? <왕과 나>에서 처선과 폐비 윤씨의 애끓는 로맨스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이 작품이 시청자의 흥미를 끌었을까?
바로 이런 장치들이 시청자를 사로잡은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평범한 양반가문의 여식인 의빈 성씨를 도화서 다모로 둔갑시키고, 허준보다 150년이나 후대의 인물인 유의태를 허준의 스승으로 만들고, 처선보다 20살 가까이 어린 폐비 윤씨를 그의 또래로 만든 것이다.
이런 사극의 역사왜곡은 대중에게 잘못된 사실을 마치 진실인양 전달해 그릇된 역사 인식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부정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했듯이, 사극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대중에게 역사 알리기' 측면에서 실존했던 인물의 성별까지 바꾸는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다. 시청자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사극이라는 드라마가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할 때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꼭 나쁜 면만 있을까? <바람의 화원>의 역사왜곡은 부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있다. 미술사학계의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남자인 신윤복을 여자로 둔갑시켜 시청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고 그릇된 역사 인식을 갖게 할 위험을 지닌 것이 부정적인 효과일 수 있겠다. 반면 김홍도만큼이나 빼어난 그림을 남겼음에도 크게 조명 받지 못했던 신윤복을 재조명함과 동시에 그의 풍속화를 대중에 널리 알리면서 신윤복과 풍속화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것이야말로 긍정적인 효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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