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운가는 길에서 만난 풍경.선경을 지나면 또 하나의 선경이 다가오는 몰운대.
강기희
그래서이네. 휘황한 밤의 세계가 빨아당기는 유혹을 피해 몰운대로 오게나. 내일 몰운대에서는 시인과 소설가, 음악인들이 모여 '몰운'을 노래한다네. 세상의 끝을 보려했지만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투신할 수 없는 곳인 몰운대에서 절망보다는 희망을 노래하자는 것일세.
시월의 마지막 날 몰운에서 시인 작가들이 희망가를 부른다내일, 시월의 마지막 날은 쓸쓸한 사람들이 가녀린 등 대고 온기를 나누는 희망의 시간이라 말해도 좋겠네. 피곤한 다리와 힘든 어깨 잠시 쉬게 할 수 있으니 모처럼 '삶의 여유'를 부려보는 호사도 좋겠네.
는적거리는 두부 한 입 베어 물고삶의 부챗살에 옴팡지게 달라붙은 악몰(惡沒)을 매어달고길을 떠나야만했던 일이 있다 그 길에서 몰운대를 만난 일이 있다어서 가야한다는 시늉으로 가던 길은 왼굽이 오른굽이 몸을 비틀었지만 마음은 어느새 몰운(沒雲)이 되어한 깃 새털로 날고다시 내 나이 스무살 무렵의 화선지에는 바람처럼 구름처럼몰운대란 이름 하나 환하게 새긴 일이 있다- 윤일균 시 '몰운대란 이름 환하게 새긴 일이 있다' 중에서또 그래서이네. 서울 을지로 6가에서 순대국집을 하던 윤일균 시인은 '는적거리는 두부 한 입 베어 물고' 길을 떠아냐만 했던 적이 있다고 했네. 그렇게 떠난 길에서 시인은 몰운대를 만났다고 하네. 세상의 끝을 찾아 떠난 사람이 당도하는 곳인 몰운대는 상처입고 아픈 영혼을 구름으로 바람으로 맞아준다네.
추락하는 주가와 깡통이 된 펀드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살기 어렵다네. 하루를 살아내기에도 벅찬 사람들에게 떨어지는 주가와 오르는 환율이 무슨 '생의 지표'라고 달러 한 장, 주식 하나, 잘 나가던 중국 펀드 하나 없지만 뉴스 시간만 되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고 하네.
몰운대에 반달 뜨면 그것은 타다 남은 그대의 '심장'윤일균 시인이 삶터로 운영하던 순대국집을 순대국처럼 말아먹은 이유도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숨통 좀 트이게 해달라고 발버둥쳐도, 죽어가는 목숨 살려달라 악을 써도, 세상은 변하지 않고 조금씩 목을 조여오는 이 땅의 몰상식들. 죄진 자가 더 큰소리로 악 쓰며 종횡무진하는 가진 자들의 폭력.
그럴 땐 몰운대로 오시게.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삶은 저물고, 몰운대 소나무 등걸에 반달 하나 뜨면 그것이 그대의 타다 남은 심장일 것이네.
나 오늘 몰운에 서서, 길을 떠나온 사람들에게 묻는다. 그대, 몰운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그리하여 아침의 신선한 바람과 저물녘의 안개, 보랏빛 구름 뒤로 비상하는 새 떼의 물결… 분명 그 아침에 펼쳐지는 지상의 아름다움은 여행자를 위한 축제. 그러나 나 이제 지천명에 이르러 비로소 몰운대에 서서 몰운의 아름다움만 보지 말고 수십길 벼랑에 스며든 상처 입은 영혼을 보라고. 영욕과 연민, 과거와 현재의 혼돈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몰운의 길을 만나라고 말하고 싶다. - 소설가 유시연의 산문 '내 생의 경계 구역에 서서' 중에서몰운이 고향인 소설가 유시연은 몰운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네. 그가 이번 행사에 참여해 낭송할 글엔 생에 대한 깊은 사유가 담겨있다네. 힘겹게 살아가는 몰운의 사람들에게 몰운대는 오르지 못할 세상과 같다네.
지긋지긋한 몰운을 떠나기 위해 불면의 밤을 보냈던 어린 시절, 소설가의 눈에 비친 몰운대는 넘어야 할 거대한 산과 같았다네. 하여, 지천명이 된 소설가는 몰운대에 서서 몰운의 아름다움만 보지 말고 수십길 벼랑에 스며든 상처 입은 영혼을 보라고 말하고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