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만에 새 시집을 출간한 시인 허연.
민음사 제공
잉글랜드 축구 3부 리그 수비수가 날 울릴 때가 있다. 얼마나 더 살겠다고 MRI 찍는 통 속의 고독을 견디는 구순의 노인이 날 울릴 때가 있다. 쓰러지기 전 거품 문 투우의 마지막 진실 같은 거. 그게 날 울릴 때가 있다…
- '슬픈 빙하시대 5' 중 일부.시(詩) 속에 드러나는 어두움과 염세에도 격조가 있다면 시인 허연(42)이 구사하는 시어는 세련된 어두움과 염세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아픔이나 절망을 노래하면서도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환멸을 말할 때도 날것의 드러냄이 아닌 곰삭은 은유를 사용하는 사람.
하지만, 시인이 사용하는 염세와 어두움의 포즈는 말 그대로 폼 잡기 혹은, 제스처에 그치기 쉽다. 진실성을 담보하지 못했을 때 그렇다. 허나, 허연은 세련됨 위에 진실성까지 갖춘 시들을 독자 앞에 내놓음으로써 이런 우려를 불식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허접할수록 아픔답다. 고대의 동굴 속에서 등잔의 그을음을 발견했을 때. 아, 누군가 살려고 했었구나. 포기하지 않았었구나. 저잣거리를 도망친 누군가가 여기서 욕망을 접었구나. 외롭게… 흔적은 그렇게 오래간다. 동굴을 걸어나오며 생각했다. 자기 발로 동굴에 들어온 사람들을…- '생태보고서 3' 중 일부.위에 인용한 시들처럼 진실한 어두움과 염세를 노래하는 시 수십 여 편이 담긴 책이 출간돼 조용한 화제를 부르고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민음사). 시인 허연이 첫 시집 <불온한 검은 피> 이후 13년 만에 내놓은 두 번째 시집 제목이다.
첫 시집 출간 후 10년 가까이 시를 쓰지 못했다는 허연은 어느 날 문득 '시가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란 생각을 떠올렸고, 이번 시집은 바로 그 갑작스러우면서도 당연한 깨달음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1991년 <현대시세계>를 통해 등단한 허 시인은 생의 기쁨보다는 슬픔, 삶의 희망보다는 절망을 노래해온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축축하지만 예민한 시의 촉수를 뻗어 세상과 인간의 상처와 아픔을 감지해낸 작가. 그런 생채기를 더듬으며 분명 그도 아팠을 것이다.
하지만, 허연의 시는 어둡지만 어둡지만은 아니하고, 염세적이나 염세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역설은 앞서 언급했듯 그가 누구보다 시를 진실한 태도로 대하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출구 없는 캄캄한 세상 탓에 엎드려 통곡하지만, 그 울음이 그치면 한 조각 남아있을지 모를 빛을 찾아가는 사람. 맞다 그런 게 시인이다.
출근을 하면서 그날을 생각합니다. 낙타가 고래였고, 고래가 낙타였다는 시절을 생각합니다. 그들 중 누군가가 바다로 걸어 들어갔던 그날을. 그들이 왜 헤어졌고 다시 만나지 못했는지. 수천만 년 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수천만 년 전' 중 일부.
무서운 속도로 닥쳐온 2008년 가을과 수천만 년 전 전설의 시대를 오가며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어두움과 염세를 탐구하고 있는 허연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새 시집이 나온 것을 축하한다"고, "당신에게 시는 무엇이냐"고, "왜 밝고 환한 문장을 쓰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래는 그가 보내온 답변이다. 더하거나 빼지 않고 모두 공개한다. 허 시인이 보내온 시처럼 말갛게 슬픈 문장을 다시 한번 읽으며 혼잣말로 이런 탄식을 했음도 고백한다.
'아, 언제쯤이면 세상이 시인에게도 웃음과 행복을 허락할까?'
시인의 반문, 인간이 찬양할만한 존재인가?-정말 오랜만에 시를 통해 사람들을 만났다. 그간 시를 쓰지 못하거나, 쓰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는지? 그게 아니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쓰고 있었던 것인지."첫 시집을 내고 한 8년 동안 시를 쓰지 못했다. 직장생활하면서 많이 바빠졌다.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에서 시를 쓸 수가 없었다. 모든 걸 투여하지 않은 시는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시가 아니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하는 거, 웃는 거, 우는 거, 싫어하고 좋아하는 거. 이런 거를 다 시에게서 배웠는데 시를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가지. 내 자신이 시정잡배라는 걸 깨달았다. 20대 때 나는 사실 내가 그래도 평범치 않은 인간이라고 믿으며 살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나는 시정잡배였다. 그래서 시작했다. 시정잡배의 시를 쓰자. 시 쓰는 시정잡배가 되고 싶었다."
-늘상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신문사 기자)으로 산다. 시를 발상하고, 익혀내는 시간이 모자랄 듯도 하다. 언제 시를 쓰는 건가? 새벽잠 혹은, 점심시간을 줄이고 포기하면서 쓰는 것인지."원래 사람만나는 걸 썩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시를 쓰면서 사람 만나는 시간이 더 줄었다. 시를 다시 쓰기 시작할 때, 시인의 마음을 다시 찾는데 2년 정도 걸렸다. 시는 주로 밤에 쓴다. 물론 낮에도 시 생각을 많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