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휠체어를 탄 1단지 주민이 "왜 사람이 다니는 길을 담장을 쳐서 막냐"고 항의하자 2단지 주민들이 이를 에워싸고 "돌아서 다니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주빈
길이 40m, 높이 1.3m의 담장은 결국 주민끼리 맞고소하는 사태까지 불러오고 말았다. 주공 분양아파트와 주공 임대아파트 사이엔 이제 담장보다 길고 높은 갈등이 굳어가고 있다.
문제의 담장은 광주 북구 동림동 1단지 동천마을과 2단지 동천휴먼시아(698가구)를 가로지르고 있다. 지난 6월 95㎡(29평형)와 109㎡(33평형) 분양아파트에 사는 2단지 주민들은 "사유재산을 보호하고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겠다"며 1단지와 2단지 사이에 철제담장을 쳤다. 1단지는 임대아파트로 모두 1442가구가 살고 있으며 52㎡(16평)와 62㎡(19평)로 구성돼 있다.
2단지 주민들은 "단지 내에 도로가 나있는 261m 중 221m는 분양가에 포함돼 있는 사유지인 만큼 주공이 보상을 하지 않는다면 보행자 통행을 막을 수밖에 없고, 또 사유지인 만큼 담장을 치든 말든 그건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다.
"소음에 쓰레기 투기까지..." 담장 친 분양아파트 주민 2단지에 산다는 한 여성은 "1단지 아이들이 2단지로 마구 뛰어다니면서 시끄럽게 하고, 1단지 사는 사람들이 쓰레기도 갖다 버렸다"고 주장하면서 "철제울타리를 쳐놓으면 훨씬 안전하다"고 담장 설치에 찬성했다.
이번 사태를 초기부터 보도해온 광주 지역 한 기자는 "2단지 주민들은 분양아파트에 사는 자신들과 임대아파트에 사는 1단지 주민들 사이에 철제담장을 쳐서 경계를 분명히 하면 분양율도 높아지고 분양율이 높아지면 아파트값도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2단지 주민들이 설치한 이 철제담장 때문에 그동안 1, 2단지 사이를 자유롭게 왕래하던 아이들은 물론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도 약 200m 이상을 돌아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1단지 주민들은 "왜 하필이면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에 담장을 치냐"며 반발하고 있다. 1단지에 사는 한 주민은 "담장을 친 이유로 안전 문제 운운하는 것은 사실상 우리를 함께 살 수 없는 범죄자 취급을 하는 꼴"이라며 "가난이 죄인지 자괴감마저 든다"고 한숨을 쉬었다.
주민 김아무개(52)씨는 "19평이나 29평이나 주공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다 같은 서민인데 굳이 저렇게 편까지 가르려고 기를 쓰는 모습이 되레 안쓰럽다"며 혀를 찼다.
중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는 한 학생은 "저렇게 담장을 만들어 놓으니까 애들이 돌아가기는커녕 오히려 담장을 넘어가려다 다치는 경우가 많고, 내 동생도 다쳤다"면서 "빨리 담장을 없앴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제 철거하자 또다시 담장 친 주민들... 몸싸움에 고소까지 담장 철거를 요구하는 1단지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주공 측은 지난 10일 철제담장을 철거했다. 하지만 2단지 주민들은 15일 밤 다시 철제담장을 치고 통행로를 차단하고 있다.
급기야 15일 밤에는 담장을 설치하려는 2단지 주민과 이를 막으려는 1단지 주민들 간에 고성과 욕설이 오가고, 몸싸움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 와중에 2단지 주민 두 명은 장애인인 1단지 주민 오아무개씨가 자신들을 폭행했다며 경찰에 고소하기 했다.
이에 대해 고소를 당한 오씨는 "내가 의지하고 다니는 쇠지팡이가 그날 부러졌다, 쇠지팡이가 부러질 정도로 그 분들이 나에게 맞았으면 어디가 골절 나든지 할 텐데 안경이 부러졌다며 나를 고소했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오씨는 "2단지 입주자 대표가 나를 또 고소했다는 것을 오늘(27일)에서야 알았다"며 "명백한 불법행동을 선동한 만큼 그 대표를 맞고소할 것"이라고 정면 대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철제담장이 이웃 간 맞고소 사태까지 부르고야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