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유성호
"MB, DJ를 배워라."민주당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다. 요즘 한나라당 의원들은 슬며시 김대중(DJ) 전 대통령 얘기를 곧잘 꺼낸다.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는 주가, 치솟는 환율……. 나빠질 대로 나빠진 현재 경제상황이 과거 IMF 구제금융 시기를 떠올리는 탓이다.
그간 한나라당에서는 DJ를 거론하며 고운 소리를 하지 않았다. '햇볕정책'을 두고선 '퍼주기', 경제정책을 놓고선 '중산층 파괴'라고 몰아붙이며 흘겨보기 일쑤였다.
그랬던 한나라당이 이제는 DJ가 구제금융 시기를 극복한 '공'에 대해 평가하기 시작했다.
의원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특히 'DJ의 용인술'이다.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한 DJ의 손에 쥐어진 건 '빈 금고'였다. 경제위기 극복이 당면한 숙제였다.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과 처지가 비슷했던 셈이다. 시선은 경제팀을 어떻게 꾸리느냐에 쏠렸다.
DJ "능력만 있다면 과거 불문" - MB "믿을 수 있는 측근만" 그런데 DJ는 '1기 경제팀'으로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을 썼다. 비상경제대책위원장이었던 김용환 당시 자민련 부총재의 추천을 받아들인 결과다. DJ는 두 사람과 일면식도 없었다. 더구나 이헌재 전 위원장은 대선 때 이회창 후보(현 자유선진당 총재)를 도운 측근이었다. 하지만 DJ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믿을 수 있는 사람만 쓴다"는 게 여권의 평가다. 대통령이 시장의 불신과 여당의 빗발치는 교체론에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을 갈지 않는 이유중의 하나다. 이런 탓에 청와대와 내각의 요직에는 측근들이 버티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서병수 한나라당 의원은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은 '믿을 수 있는 사람·가까이 있는 사람 중심'인데 인재는 널리 구해야 하는 법"이라며 "과거 정부 사람이더라도 충분한 경험과 경륜이 있다면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규성·이헌재를 발탁한 DJ의 지혜를 본받을 필요가 있단 얘기다.
DJ의 경우에 빗대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영남권 의원은 "아무리 실력이 있고 괜찮은 사람이 있어도 대통령은 자신이 믿지 못하면 쓰지 않는 것 아니냐"며 "앞으로도 과연 새로운 인사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대통령이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게 관건"이라며 "이런 점은 DJ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잃어버린 10년', 그만 쓰자... 과거 정부 공도 평가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