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키질쿰 사막
김준희
이런 생각도 잠시, 어느새 태양은 뜨거워졌다. 도로 양 옆으로는 끝없는 사막이 펼쳐져 있다. 내가 동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태양은 내 정면에서 이글거리고 있다. 머리에 쓰고 있는 모자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 발과 다리는 아프지 않지만 몸이 나른해진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쉴 곳이 없다. 쉬려면 그늘에 들어가 앉아야 하는데, 그늘도 없고 앉을 만한 곳도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사막뿐.
결국 나는 선채로 태양을 등지고 이미 따뜻해진 물을 들이켜고 빵을 먹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앉을 만한 곳이 나오지 않을까. 도보여행 첫날부터 이렇게 힘들면 어떡하나. 지평선을 바라보며 계속 걷는다. 몇차례 언덕을 넘었지만 그때마다 똑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저 언덕을 넘으면 쉴만한 곳이 보이겠지, 이렇게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저 멀리 도로 옆으로 뭔가가 보였다. 저게 과연 무얼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인공적인 구조물인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저곳에 그늘이 있다는 얘기다. 난 걸음을 빨리 옮겼다. 조금씩 지쳐가지만 쉴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진다.
그런데도 저 건물은 점점 멀어져가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낮은 언덕 위에 있는 것으로 보였는데, 언덕에 오르고나니까 다시 저 멀리 떨어져있다. 멀리 있는 것이 가깝게 느껴지는, 사막에서의 전형적인 착시현상이다. 나는 걸으면서 울화통이 터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도로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까.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도, 남은 거리를 알려주는 간판도 없다. 도로 양옆으로는 나무 한그루 없다. 족히 20km는 넘게 걸어왔는데 그 동안에 그늘이라고는 경찰검문소의 그늘이 전부였다. 도보여행자를 위한 배려가 전혀 없는 도로다. 하긴 이곳에 와서 도보여행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테니, 이렇게 만들어놓은 것도 이해가 된다.
걷다 보니까 그 구조물이 점점 가까워진다. 저건 우리나라 국도변에 있는 버스 정거장 비슷한 건물이다. 콘크리트로 만든 견고한 구조물. 내 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저기까지 가서 쉬자, 시원한 그늘에 들어가 앉아서 물도 마시고 빵도 먹자. 그러면 다시 힘이 생겨날 것이다. 킵차크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쉬고나면 괜찮을 것이다.
드디어 도착한 버스정거장. 허리는 뻣뻣하게 굳었고 머리는 텅 비었다. 먹은 것도 없는데 계속 헛구역질이 난다. 이게 바로 탈진 직전의 증상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늦지않게 휴식장소에 도달한 것이다. 아무도 없는 정거장 안에 들어가서 핸드카를 한쪽에 놓고 나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막의 열기와 비교하니까 이 그늘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물을 마시고 콘크리트 벽에 기대 앉아 있자니 점점 노곤해진다. 이대로 조금 자고 일어나도 되지 않을까.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내 머리에서 경고하지만, 나의 몸은 계속 늘어지고 있다. 자꾸만 드러눕고 싶다. 정신없이 졸립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러면 안되는데….
종일 걸어서 도착한 킵차크 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