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직불금 수령 논란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이봉화 전 보건복지가족부 차관.
권우성
이쯤에서 2년 전 여름에 귀농한 내가 목격한 장면을 이야기해 볼까 한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귀농한 이웃 분이 농사지을 땅 1000㎡ 이상을 구입한 후 농지원부를 떼러 갔더니, 담당계장이 현장실사를 나와서는 "아무것도 심은 게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분명 농사지을 땅인데도 말이다. 몇 달 뒤 겨우 그걸 얻어 냈지만, 그분들 오신다고 아침부터 노심초사 대기하고 있었던 이웃 분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농지원부는 농민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양식'이다. 농지원부가 있으면 건강보험료 경감혜택을 받을 수 있고 농민에게 주는 정부지원금 수급 자격도 그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이들 학교 등록금도 농지원부를 떼어다 주면 감면해 준다. 1년 동안 뼈 빠지게 농사지어 쌀 10마지기 얻어, 겨우 200만원 정도 건지는 가난한 농사꾼에게 이런 혜택은 수입농산물에, 비싼 생산비에, 낮은 쌀값에 부딪혀 절뚝이는 농민들에게는 걸음이라도 가능하게 해 주는 목발 같은 존재다. 8년 후 양도소득세 면제? 농민들은 이런 거에 관심도 없다.
당시 '서울'하고도 서초구에 사시는 공사가 다망하신 현직 차관께서 '경기도'하고도 안성까지 가셔서 1000㎡ 이상의 경작지에 농사를 짓겠다고 농지원부를 작성하여 신청하고 해당읍면사무소 담당자와 경작지 동네 이장님의 실사까지 마친 후 농지원부를 취득을 하셨다?
공무원증도 모자라서 농부자격증까지 있어야 할 이유가, 요즘 많이 회자되는 8년 후 양도소득세 감면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마음 깊이 농사를 열심히 지어 볼 요량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두 가지가 있다. 농지원부 취득과정이 요령부득이라는 것과 쌀 직불금 신청 자체가 이미 밝혀진 대로 실제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의도된 거짓이라는 것.
'부패' 괜찮다는 청소년들... 모든 게 썩은 윗물 탓아까 그어 놓았던 밑줄 친 부분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우리나라 국민들은 공무원들에게 "아주 높은 도덕성과 준법성을 요구하고 있"다는 건데, 소가 웃을 말이다. 이번 일은 진짜 농부에게 돌아가야 할 쌀 직불금을 농부도 아닌 사람들이 허위로 농지원부를 발급받고 거짓경작으로 가로채면서 빚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주 높은 도덕과 준법을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 않다. 이건 아주 기본적인 도덕과 준법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정치권과 언론계, 공무원들을 비롯해서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라고 불리는 부류들에 부지기수인 모양이다. 한 마디로 윗물이 썩었다. 그러니 언론을 장식했던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부패지수가 그 모양일 수밖에. 윗물에 이어 아랫물도 썩어가고 있다.
'감옥에서 10년을 살더라도 10억원을 받게 된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는 항목에 18세 미만 청소년 17.7%가 "그렇다"고 대답했단다. 24.3%는 '나를 더 잘 살게 해줄 수 있다면 지도자들이 불법행위를 하더라도 괜찮다'는 물음에 "그렇다"고 말했단다. 기가 찰 노릇이다. 중학생보다 고등학생에 "그렇다"는 대답이 더 많았다는데 18세 이상 어른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미 그만 둔 사람의 마지막 말을 꼬투리 잡아 물고 늘어진다고 생각했다면 미안하다. 그런데 이미 그만 둔 사람'만'의 생각 같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몰랐다거나 다들 그렇게 하는 관행이라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거나 하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는 충고도 하셨다는데 참말로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가 또 나왔다. 매번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되풀이 되는 말이 '모르고 한 일이다', '관행이었다'다.
이 말 정말 지겹도록 들었다. 그래서 다들 그런 핑계로 유야무야된 일이 어디 하루 이틀인가, 수십 년 동안 계속된 것을. 그런 사람들이 사회지도층이 되어주니 우리 선량해야 할 청소년들 입에서 10억이라면 10년 감옥도 괜찮다느니, 잘 살게만 해 준다면 모든 걸 용서해 준다느니 하는 민망한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정쟁에 열 올리지 말고, 잘못한 사람은 벌을 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