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십리축제축제를 위해 설치해놓은 천막들이다.
장태욱
군사요새가 서귀포를 낳아지금 서귀포는 국내에는 물론이거니와 세계에도 잘 알려진 관광미항이다. 하지만 서귀포는 조선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름 없는 포구에 지나지 않았다. 이 포구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은 이곳에 군사요새로서의 역할이 주어지면서부터다.
1300년(충렬왕 26)에는, 탐라를 동도와 서도로 나누고, 대촌(大村, 제주시 지역을 지칭)을 제외한 지역에 현을 설치하였다. 당시 설치한 14개 현 중 홍로현은 지금의 서귀포시 서홍동과 동홍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조선전기까지 서귀포는 홍로현의 포구로 이용되었다.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1439년(세종 21)에 이르자 제주군안무사 한승순이 조정에 건의해서 서귀진을 설치했다. 이후 홍로현은 폐현되어 홍로마을로 남게 되었고, 서귀포는 홍로현의 관할에서 벗어나게 되어나 정의현 소속이 되었다. ‘서귀포 70리’라는 말은 정의현성(지금의 성읍민속마을)에서 서귀포까지 거리가 70리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