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폭락을 거듭한 한국 증시는 1000선마저 위협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미국 구제금융안 부결로 국내 증시가 한 때 코스피지수 1400선이 붕괴됐을 당시 여의도의 한 객장 모습
최경준
'10억 만들기' 열풍이 가정 경제 병들게 해
인천에 사는 강아무개씨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펀드 120만원, 부동산 자산 1억6천만원이 전부이다. 올 초까지만 해도 7천만원의 무리한 부채를 끼고 산 집이 연일 오르는 분위기였다. 월 250만원 소득에서 7천만원에 대한 이자 부담은 저축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집값이 올랐기에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심지어 20평형대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답답하다는 생각으로 30평형대 빌라로 옮겨 타기위해 그나마 갖고 있던 예금 자산 400만원을 다 털어 계약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팔아 잔금을 치르면 될 것이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집을 내놓았지만 보러 오는 사람도 없다.
그나마 갖고있는 펀드 자산은 계속 까먹고 있는 처지이고 더 빚을 낼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이다.
평범하게 살아오던 강씨가 갑자기 7천만원이란 큰돈을 빌려 집을 사게 된 것은 그가 유난히 탐욕이 많아서가 아니다. 집으로 돈 벌겠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고 무리한 부채를 끼고서라도 단숨에 큰 수익을 실현하려는 대박에 대한 기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강씨의 그런 욕심은 '부자 되세요'라는 인삿말처럼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것이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바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무리해서라도 집은 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올해 초 상담을 통해 주택을 처분하고 빚을 갚은 어느 고객은 친정엄마로부터 '집을 팔다니 귀신 들렸다'라며 미친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조금씩 불씨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무조건 낙관했고 낙관 속에서 돈돈 거리는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위험의 징조들을 무시했던 것이다.
병적인 낙관이 가정경제를 벼랑 끝으로 내몰아현재의 경제위기는 주가 3천을 자신하던 대통령의 말처럼 어느날 갑자기 외부 요인들에 의해 생겨난 불운이 아니다. 전문가들의 낙관은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단지 예측 불가능한 글로벌 경제의 변덕 때문에 생긴 불운이 아님은 분명하다.
위험의 징조는,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해부터 본격화되었고 2004년부터 이미 미국 중산층 몰락을 우려한 이야기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훨씬 오래 전부터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무슨 마법에 걸린 사람들처럼 미래를 지나치게 낙관하기만 했다. 전 세계 부동산 시장이 하락세로 돌아선 분위기에서도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바뀌어 집값이 더 뛸 것이라며 뒤늦게 무리한 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사람들이 올 상반기 주택시장을 끌어 올리기도 했다. 미국이 서브프라임의 소용돌이에 더 큰 위기를 맞고 있을 때에도 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예측을 쏟아내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낙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낙관적으로 믿고 싶어하는 것에 더 가까웠다. 경제적 현상이란 늘 복잡해서 경우에 따라 양면성이 있다. 단편적인 경제적 현상 이면에는 기회와 위험이 늘 따라다닌다. 따라서 기회는 잡고 위험은 통제해야 하는데 우리는 기회는 맹신하고 위험은 지나쳐 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연초 무섭게 치솟던 유가로 세계 경제를 위협하게 된 것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유가가 올라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느라 밀가루 등의 곡물 수요가 급증해 곡물가격도 따라 오른다며 지난해부터 '에그플레이션'이란 신조어가 유행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경제변수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유가 상승과 곡물 가격 상승조차 경기가 좋아질 것이란 전망의 재료로 활용되기도 했었다. 지난해 어느 경제 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과거 미국 경기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한국이지만 이제 미국보다는 신흥시장 성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며 "완벽하지는 않지만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호한 흐름을 보이는 제한적 디커플링이 예상된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올 초에는 어느 고객이 은퇴를 2년 앞두고 빚을 내서 강남에서 인기리에 분양하고 있는 상가에 투자를 고민하며 상담을 의뢰하기도 했었다.
올해 미 경제 불안과 글로벌경제의 악재가 많아 금리 상승 우려가 있으니 빚을 내서 투자하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러나 그 고객은 미국 금리가 떨어져 우리나라 금리와 차이가 나니까 조만간 우리도 금리를 떨어뜨릴 것이란 전망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금리가 떨어져 다시 한 번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릴 것이란 진단이 우세하며 따라서 다소 위험 부담이 있더라도 투자가치가 있는 부동산을 저가 매입할 기회가 아니냐는 것이다.
정보를 객관화시켜 미래를 냉정하게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모습으로 맹목적으로 믿고 그 믿음을 합리화하기 위해 정보를 짜맞추고 있는, 한 마디로 병적인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