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내부. 평소엔 아무도 없다. 왼쪽은 인권활동가 칸티, 가운데는 나투.
진주
[두 번째 회의] "넌 과자도 따로 먹어!"그 다음달, 두 번째 회의가 열렸습니다. 나투는 여전히 의자에 앉을 수가 없었습니다. 의원들 가운데 나투를 동조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마을에서 힘있는 사람은 의회를 이끌어가는 의장이었고 의장을 떠받치는 의원들이 절반이 넘었습니다.
달리트에게 의석이 할당된 것처럼 여성에게도 두 개의 의석이 할당되었지만 실제 회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남편들입니다. 남성 중심의 봉건적 사회가 당연시해 온 악습입니다. 이들은 특히 의장을 지지하며 나투가 의자에 앉지 못하도록 협박했습니다. "앉기만 해봐. 다리를 분질러 버릴테니."
회의가 진행되는 도중에 간식용 과자가 나왔습니다. 모두들 테이블에 과자를 부어 함께 먹었지만 나투만 따로 먹었습니다. "종이를 찢어서 거기에 과자를 줬어요. 함께 먹을 수 없다면서요. 그것도 당연한 거였죠, 그들에겐."
세 번째 회의에서 나투가 마을의 발전에 관해 의견을 제시했을 때, 의장은 나투에게 경고했습니다. "넌 그런 이야기를 할 권리가 없어. 달리트 주제에. 우리가 뭘 할지는 내가 결정해. 내 말이 법이야."
사실 달리트 차별에 대한 나투의 힘겨운 싸움은 의회 의원으로 당선되기 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달리트 소유의 토지를 상층카스트 출신의 마을 사람들이 침범하고 빼앗으려고 했을 때, 나투가 토지소유권을 지키는 데 앞장섰습니다.
싸우지 않으면 힘없는 달리트들은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싸우기 시작하면 지킬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부터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의 달리트들은 나투가 달리트를 대표하는 의원으로 나설 것을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카스트와 봉건질서 앞에 무력한 법어느 마을이든지 마을을 이끌어가는 중심세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세력은 브라민이나 크샤트리아로 구성된 상층카스트들입니다. 상층카스트들이 대부분 토지를 소유하거나 중요한 관직을 차지하고 있고, 정치세력이나 경찰세력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다른 카스트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카스트적 관계망은 상층카스트들이 행한 범죄를 범죄가 아닌 것으로 만들고 있고, 법은 카스트적 신분질서 앞에서 무력합니다.
마리다 마을은 조금은 특이하게 상층카스트가 아니라 'OBC(Other Backward Class)'라고 불리는 후진계급들이 마을의 지배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을이 형성된 이래로 양적으로 증가한 타코르라는 후진계급들은 마을 내 토지 소유를 확장시키면서 정치력도 성장시켰습니다.
상층카스트인 브라민이 마을의회의 의장에 당선되면 힘을 이용해서 물러나게 만들었고, 상대적으로 소수인 상층카스트들은 마을에서 힘을 발휘하기 어렵게 되자,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타코르들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더욱더 강성해졌고, 타코르는 타코르들끼리 더욱 뭉쳐서 세력을 형성해나갔습니다.
소수의 상층 카스트들이 후진계급 타코르들에게 밀려나가는 동시에, 같은 타코르 내에서도 경제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은 중심세력에서 밀려났습니다. 이들은 마을 내 타코르 공동체의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토지를 소유하고 있긴 하지만 매우 영세하며 중심세력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밀려난 타코르들 가운데 카스트 차별에 반감을 느끼면서 달리트들을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내에서 후진계급들의 불안정한 지위가 타협할 세력을 찾게 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