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의 대한민국, '사회부총리'가 필요하다

[주장] 경제부총리 부활만으로는 후진국병 못 고쳐

등록 2008.10.14 13:40수정 2008.10.14 13:40
0
원고료로 응원
a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인천광역시의 공단 지역.(자료사진) ⓒ 이희동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인천광역시의 공단 지역.(자료사진) ⓒ 이희동

 

지금 여당과 청와대 사이에 경제부총리 부활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에 가세한 민주당도 여당과 함께 경제부총리 부활에 대한 찬성 의견을 내놓을 모양이다. 민주당이 감세 정국에 이어 이슈를 선점하지 못하고 또다시 들러리를 서는 결과가 된다. 정말로 안타깝고 답답한 상황이다.

 

지금 이 순간 민주당이 단순히 들러리로 빠지지 않으려면 '사회부총리'를 이슈로 들고 나와야 한다.

 

'사회부총리'는 내가 갑자기 생뚱맞게 제기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몇년 전부터 진보진영의 정책보고서에서 제기되어왔던 이슈로서 참여정부 시절에 일부 고위관료(이해찬 당시 국무총리, 김근태 당시 보건복지부장관)가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언급한 적이 있다. 또한, 지난 대선 때 민주당의 일부 대통령 예비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운 적도 있다. 왜 이러한 정치적 자산을 사장하는가?

 

'사회부총리' 이슈는 현재 국면에서 정치적으로도 유효할 뿐만 아니라, 중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적으로도 필요한 사안이다.

 

물적 자원 투자에 과도하게 치우친 후진국형 발전 전략 

 

정부 기능의 핵심 중 하나는 정부예산 배분이다. 정부예산은 한정되지만, 국민이 바라는 요구는 무한하다. 따라서 정부예산의 배분은 여러 계층 간 이해관계의 조정을 거쳐 결정되기 마련이고, 이러한 이해관계의 조정 과정이 바로 '정치'인 것이다.

 

한 나라가 건강하게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그 나라가 보유한 물적자원과 인적자원을 적절하게 결합시켜야 한다. 나라를 자동차에 비유하면 물적자원과 인적자원은 양쪽 바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자원의 배분이 물적 부문 또는 인적 부문의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게 된다면 한쪽 바퀴가 터지게 될 것이다.

 

그 나라의 자원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며, 이는 정부의 예산 배분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1960년대부터 시행된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키워드는 '수출-건설-재벌'이었다. 이로 인해 예산은 '수출·대기업·건설'에 집중적으로 배정되었다. 서민들로부터 거둔 세금은 수출하는 대기업에 각종 금융특혜·조세감면·환율방어 등에 쓰였고, SOC와 각종 개발사업에 투자되어 건설 붐을 일으켰다. 이는 국가 예산이 경제분야 즉 물적부문에 집중적으로 배분되었음을 뜻한다.

 

후진국은 일반적으로 저임금 노동력은 풍부한 반면 사회기반시설과 민간자본축적은 부족한 상태에 있다. 따라서 후진국의 경제성장 초기 단계에서는 국가 예산이 경제분야에 집중되는 것이 도움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해 사회기반시설과 민간자본축적이 일정궤도에 오른 후에는 경제분야에 집중된 예산이 오히려 과잉투자와 예산낭비를 초래하게 된다.

 

게다가, 후진국을 벗어난 후에는 대규모 생산설비와 이에 맞춘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한 발전 전략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된다. 양질의 인적자원에 의존한 고부가가치형 지식경제로 전환해야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음은 역사적이나 이론적으로 이미 증명되고 있다.

 

양질의 인적자원을 배출하려면 사람에 대한 투자 즉 인적부문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정부는 인적자원보다 물적자원을 더 중요시하는 '후진국 병'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5년 기준 우리나라 재정지출 중 경제재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21.0%인데, 미국은 6.6%, 호주 6.6%, 캐나다 5.9%에 불과하다.('2007~2011 국가재정운용계획') 반면, 재정지출 중 복지재정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56.4%, 호주 51.4%, 캐나다 58.1%인데, 우리나라는 26.7%에 불과하다.

 

경제재정은 SOC투자, 기업에 대한 R&D 및 금융지원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물적자원에 대한 투자라 할 수 있고 복지재정은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라 할 수 있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인적자원 투자 비중은 절반 수준인데 반해 물적자원 투자 비중은 3배를 초과한다. 한쪽으로 치우쳐도 너무 치우치고 있다. 이 상태로 대한민국호 자동차가 펑크 안내고 얼마나 더 달릴 수 있을까?

 

대수술이 필요한 대한민국호 자동차

 

이 정도 중증이면 대수술이 필요하다. 그 대수술 전략은 예산권을 가진 사회부총리를 신설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부 부처를 물적자원을 다루는 경제부서와 인적자원을 다루는 사회부서로 나누고, 사회부총리가 사회부서를 총괄하며 정부예산 편성권에서 경제부총리와 동일한 권한을 갖도록 해야 한다. 경제부총리와 동일한 예산편성권을 갖는 사회부총리가 신설된다면 정부예산편성의 초기 단계에서 부터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강력히 요구할 수가 있을 것이며 이는 교육과 복지예산의 증대로 나타날 것이다.

 

(인적자원을 다루는 사회부서는 대개 보건복지·교육·노동·여성가족·문화관광·환경 등이 될 것이고, 물적자원을 다루는 경제부서는 재정경제·건설교통·산업및에너지·정보통신·과학기술·농림해양 등이 될 것이다.)

 

만약, 예산편성권을 갖고 있는 사회부총리를 신설하지 않고 경제부총리만 부활시킨다면 정부예산에서 사람이 소외되는 후진국 전통은 계속될 것이고, 대한민국호 자동차는 후진국의 늪에서 공회전만 하다 멈추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보수는 자본을 중시하고, 진보는 사람을 중시한다. 이러한 진보의 사람 중심 가치는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어야 한다. 보수가 '자본과 건설 중심의 예산'을 이야기할 때, 진보는 '사람 중심의 예산'으로 맞불을 놓아야 한다. 사회부총리는 예산분야에서 사람 중심의 가치를 실현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2008.10.14 13:40 ⓒ 2008 OhmyNews
#사회부총리 #예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라면 한 봉지 10원'... 익산이 발칵 뒤집어졌다
  2. 2 "이러다간 몰살"... 낙동강 해평습지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일
  3. 3 한밤중 시청역 참사 현장 찾은 김건희 여사에 쏟아진 비판, 왜?
  4. 4 "곧 결혼한다" 웃던 딸, 아버지는 예비사위와 장례를 준비한다
  5. 5 주민 몰래 세운 전봇대 100개, 한국전력 뒤늦은 사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