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감귤같은 탱자는 먹을 수 없다.
이장연
아무튼 밤늦게 도서관에서 나와 자동차와 가로등 불빛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탱자나무 길을 홀로 내려오다 보면, 최근 병역 의무를 마치고 3년만에 돌아온 '발라드의 황태자' 조성모의 <가시나무>란 노래가 떠오릅니다. 가슴속에 못난 욕심같이 뻗친 가시가 너무 많아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둘 곳 없고, 그 가시에 찔려 아파하는 사랑이 새처럼 날아가버렸다는 애달픈 노래 말입니다.
노랫말이 가물가물해 "내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를 되뇌다보면, 제 가슴속의 돋힌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아파하고 슬퍼하고 기다리게만 했던 잊혀진 줄 알았던 이가 점점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탱글탱글한 노란 탱자처럼 작고 귀여운 그녀가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과 함께 나타나곤 합니다.
탱자나무를 지날 때면, 일생에 단 한 번 밖에 울지 않는 전설의 새, 둥지를 떠나는 그 순간부터 가시나무를 찾아 헤매다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죽음의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우는 가시나무새도 떠오릅니다. 사랑면서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이들에게 슬프지만 아름다운 메시지를 전해준 책 <가시나무새> 속의 그녀가 말입니다.
그리고 따사로운 가을볕 아래서 뾰족한 가시에 숨어 사랑과 생명. 우주를 담은 열매를 맺은 탱자나무가 제게 말합니다. 그 아픔과 마음속 가시조차 사랑하고 사랑하라고~
덧. 탱자나무하니까 떠오르는 것 중에 하나. KBS2 TV의 <유머1번지>라는 옛 코미디프로그램에서 고인인 코미디언 김형곤씨가 등장하는 '탱자 가라사대'라는 코너도 떠오릅니다.
당시 거침없이 부조리한 사회와 세태를 풍자해 해학 넘치는 웃음을 주었었는데 말입니다. 요즘 코미디.개그.오락 프로그램에서는 예전처럼 사회풍자 요소(형님뉴스 같은거...)가 거의 보이지 않네요. '리얼'이란 이름을 붙여, 의미없는 몸개그에 막장개그로 헛웃음만 만들어낼 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