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 한편에 도장을 새겨놓았는지 하도 희한하여 한컷 잡았다.
김학현
경업대에 앉아 건너편을 보니사람들은 속리산 하면 문장대를 떠올린다. 속리산의 주봉은 문장대(1054m)가 아니라 천왕봉(1057m)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장대에만 오른다. 하지만 속리산에는 문장대나 천왕봉만 있는 게 아니다. 신선대가 있고 경업대가 있으며 거기에 더하여 입석대와 비로봉이 있다.
우리는 이번에는 신선대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문화재관람료 매표소 안내원이 문장대 쪽으로 해서 신선대를 돌아 내려오다 보면 경치가 그야말로 끝내주는 데가 있다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굳이 문장대로 가야만 그 경치를 보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신선대 쪽으로 직행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쪽은 가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문장대 쪽으로 오르면 신선대까지 가지 못한 채 돌아올 게 분명하기에. 그런데 올라가는 도중에 하산하는 이들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거다. “이쪽은 험해요. 문장대 쪽으로 올라 이쪽으로 하산하셔야 하는데.” 나이깨나 드신 아저씨가 친절하게 우릴 염려한다.
“그래요? 하지만 우린 신선대까지가 목표에요.” 이 대답에, “아, 그래요? 그래도 좀 험합니다.” 하고 내려가신다. 산에 오면 누구나 다 친구다. 연속되는 층계들로 인하여 길이 좀 험하긴 했다. 그럴 땐 옛 추억을 떠올리며 아내의 손을 잡아 끌어주기도 하며 올랐다.
세 시간쯤 올랐을까. 기어이 경업대에 올랐다. 경업대의 너럭바위에 앉아 입석대와 비로봉 쪽을 바라보니 딴 세상이다. 누가 만들면 저리 고울 수 있을까. 적당히 벌어진 바위 틈새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나무들이며, 누가 깎았는지 조각 같이 특이한 형상의 바위들, 큰 비석 하나를 길게 세워놓은 듯한 입석대, 그들 사이로 비집고 핀 노랗고 빨간 단풍잎들. 그렇게 산과 가을은 옛 이야기를 재잘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