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부부란 한 길을 함께 걸어 가는 것. 시인과 아내가 벌통에 든 꿀을 떼어내고 있다. '꿀 보다 달콤한 인생'을 살고 있는 부부이다.
강기희
비싼 토종꿀을 소설가 어머니를 위해 선뜻 건네고빠름과 느림 사이에 존재하는 아들 현준이는 부모가 꿀을 뜨는 사이, 이웃집에 사는 여자 친구와 숨바꼭질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영락없는 시골집 풍경에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현준아, 배 꺼진다 그만 뛰거라."그 말을 했더니 시인의 부인도 어린 시절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동네에서 가장 가난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시인의 부인. 그래도 대학 교육 만은 다 시켰다는 부모님. 그런 일로 유승도 시인과 함께 '국문학'을 전공했고, 유승도 시인이 정선 구절리 마을에서 광부생활을 할 때 시인의 아내가 되었다.
"꿀을 뜨려니 벌들에게 미안하네요."유승도 시인, 꿀을 한 입 베어 먹으며 말했다. 한 통의 꿀을 채우기 위해 벌이 얼마나 많은 날갯짓을 해야 했는지 인간으로서는 가늠도 할 수 없었다. 시인과 소설가는 벌들의 삶에 대해 서로 짐작해 보았지만 전자계산기로도 산출 할 수 없는 엄청난 수고로움만 확인하고는 말을 잊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이 어디 한 둘일까. 그 많은 꽃들을 찾아 다니며 꿀을 모았을 벌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것이 유승도 시인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꿀을 뜰 때도 벌들이 겨우내 먹고도 남을 양식의 꿀은 남겨 두었다.
"토종꿀이라고 하지만 꿀을 뜨고 설탕을 넣어 주는 경우도 많아요. 벌들로서는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그래서 꿀의 절반만 나눠 가지기로 했습니다."그런 시인의 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벌들은 시인의 손에 묻은 꿀을 빨아 먹기는 하지만 절대로 '한 방' 먹이는 짓은 하지 않았다.
이번엔 벌통을 직접 옮겨 보았다. 무겁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가뿐하게 들었다. 떼어낸 벌통을 드는 순간 얼마나 무겁던지 내 몸이 휘청했다. 벌통을 땅바닥에 떨어 뜨릴 수도 있는 상황, 꿀이 몸에 묻던 말던 벌통을 바투 잡았다. 족히 10kg은 될 법한 벌통에 든 꿀은 두 되 정도의 양이라고 했다.
벌통의 꿀은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게 잘 걸러 병에 담아 보관한다. 유승도 시인은 그렇게 담긴 것 중에서 한 병을 내게 건넸다.
"어머니께 드리세요. 벌들의 힘으로만 만든 토종꿀이라 효과가 좋을 겁니다."이거 참, 고맙고 미안했다. 꿀농사도 농사 중에서 큰 농사일 텐데, 선뜻 건네고 선뜻 받고 말았다. 자연에서 덤으로 얻은 것이라고는 하지만 부르는 게 값인 토종꿀이 아니던가. 그런 귀한 것을 선뜻 내어주는 시인의 마음을 어찌 갚아야 할지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고민했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