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당시 일부언론들은 정부가 대출규제에 나서자 '월급쟁이들의 강남 진입 꿈을 막았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사진은 강남의 한 아파트.
오마이뉴스 권우성
'사채시장에서 아파트 구입자금 1억원을 3개월 만기로 빌릴 경우 월이자와 수수료를 떼면 2000만 원 정도가 사채업자에게 간다. 그런데도 사채를 찾는 사람이 많은 것은 고금리 부담을 상쇄할 정도로 아파트 가격이 올라갈 것이란 기대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가등기에 필요한 서류만 갖추면 이틀 내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유인책이다.'
사채의 위험성을 알려도 모자랄 언론이 더 오를 것이니 고금리 부담을 상쇄할 만하다는 분위기의 글을 쓴 것이다. 이틀 내 대출 받을 수 있다는 편리성에 대한 친절한 언급까지 더했다. 바로 그런 보수언론들이 연일 우리는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이 미국처럼 과도하지 않아 한국판 서브프라임 가능성이 적다는 이야기를 한다. 미국과 달리 금융규제를 하는 정부에 쏟아내던 악담들을 기억한다면 너무 민망한 기사를 쓰고 있는 셈이다.
모 경제지에는 올 초 부동산 재테크 책을 하나 소개하면서 책 속 내용을 상당히 진지하게 발췌해 소개를 하기도 했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황당해서 순간 패러디인 줄로 오해할 정도였다.
'정치인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라. 위정자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지역을 체크하라. 장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끈기 있게 알아보라. 배드민턴이나 탁구모임에는 안 가는 게 나을 듯하다. 부동산에 투자할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아서다. 정보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 같고.강남 복부인을 이용하라. 술자리를 만들어서 정보를 캐내자. 술값 투자해 정보를 캐내라. 취중진담이라고 하지 않는가.'이런 황당한 내용을 경제지에서 진지하게 접해야 하는 것이 너무 서글프다. 최고의 지성이어야 할 경제 언론이 투자자를 위한 정보로 진지하게 다루는 내용이 강남 복부인을 따라다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보통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만큼 재테크 광풍이 이성적 판단을 접은 수준이었고, 믿을 만한 경제지의 이야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부자는 빚을 예찬한다'는 재테크 말말말주택담보 대출 고정금리가 10%대를 넘어섰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적인 신용경색 분위기에서 은행채 금리 상승이 CD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 한마디로 신용경색이 우리나라 금융권에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연초부터 불안한 환율이 최근에는 위기설에까지 휩싸인 상황이다. 환율 정책의 실패로 파생 금융상품에 투자했던 중소기업들이 흑자 도산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실물경기도 불확실하다. 여기에 금리상승으로 인한 부동산 담보대출 부실이 부동산 폭락으로 이어져 한국판 서브프라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마디로 가정 경제는 물가와 금리가 올라 마이너스 가계부인데 실물경기 부진으로 실직위험까지 증가하는 위험천만한 현실이다. 게다가 주가하락으로 펀드는 반토막이고 부동산은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5개월 전 어느 재테크 책의 추천 서평을 부탁받은 적이 있다. 그 책의 상당수 분량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사인 부동산 투자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미 미국발 금융위기의 심각성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아슬아슬한 뉴스가 악재가 되어 주식시장의 상승이 멈춰섰던 분위기였다.
눈에 띄는 목차가 있었다. '부자는 빚을 예찬한다.' 내용은 볼 생각도 안 했다. 출판사에 전화를 해서 만에 하나 부동산 시장이 예상 외로 폭락할 경우 이런 류의 선동은 고소 고발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조용히 조언을 해주었다.
개인의 투자실패를 두고 책이나 언론 탓을 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투자문화가 건강하게 자리잡고 시장이 건전해지기 위해서라도 전문가들의 '말의 책임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라도 자성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싶다.
이제 금리에 대한 전망, 경제 위기의 해소가 어느 시점일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게 되었다. 그럼에도 하락장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바닥론'과 '위기가 기회'라는 식의 말로 보통 사람들의 막연한 부자와 일확천금의 꿈을 부추기는 목소리가 멈추지 않고 있다.
투자의 실패는 개인의 책임이라지만 돈 앞에서 늘 허탈한 보통 사람들에게 달콤한 논리로 위험을 무릅쓰게 하는 재테크의 무분별한 '말'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묻고 제어를 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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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가 심각한 수준으로 악화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가계발 금융부실이 크게 우려된다. 채무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수많은 채무자들을 빚독촉의 고통으로 내몰고 있다.
채무자들 스스로도 이제 국가를 향해 의무만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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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도 자산'이라던 언론, 너무 민망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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