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수산시장 홈페이지 시세정보
이중현
제 경우도 원래는 보리새우를 먹고 싶었는데, 무슨 일인지 그날따라 보리새우 가격이 전날보다 무려 다섯 배 가까이 폭등하는 바람에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어요. 정말 싼값에 기분 내서 제대로 먹으려면 너댓명 이상이 우르르 돈 거둬서 이것저것 많이 시켜야 해요. 단둘이서 가기에는 기본비용이 너무 부담스럽고, 가격 효율이 떨어져요. 이건 어느 수산시장이나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노량진에서 두 명이 싼 가격으로 맛있게 잘 먹을 방법은 사실 없어요.
이 남자의 생선회 먹는 방법하지만 저도 사나이랍니다. 아리따운 여자후배 앞에서 그깟 돈 몇 푼에 쩨쩨한 모습을 보일 수는 더더욱 없지요. 효율이고 자시고, 몇군데 돌아다니면서 가격대를 알아보다가 광어(넙치) 큰 거 한 마리 잡아서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죠. 다행히도 우리는 둘 다 식사량이 남달라 놔서 남길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어요.
광어도 광어지만, 오늘의 진짜 주인공은 전어예요. 가을이잖아요. 광어나 도다리는 사실 봄에 먹어야 제 맛이고, 가을은 전어의 계절이에요. 9월이 지나면 전어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몸에 기름을 잔뜩 비축하고 살을 찌워놓거든요. 얼마나 고소하다구요. 또 이 시기에는 가시가 아직까지 얇기 때문에 전어를 뼈째로 씹어 먹을 수가 있어요.
요즘은 전어회를 시키면 뼈를 하나하나 발라주는 곳도 있다던데요. 전어회는 모름지기 뼈째 썰어낸 세꼬시를 꼭꼭 씹어 먹어야 고소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어요. 생선 뼈에는 칼슘도 많잖아요. 가시가 작고 얇아서 목에 걸릴 일도 없어요. 가시 말고도 냄새가 비리다고 거북해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그럼 마늘이랑 같이 상추나 깻잎에 싸 먹으면 돼요.
처음 먹기에는 향이 강한 깻잎이 더 낫겠네요.
그리고 전어는 성미가 급한 생선이라서요. 바다에서 잡히면 금방 죽어버려요. 죽은 생선은 횟감으로 쓸 수 없죠. 서울에서도 이렇게 전어회를 먹을 수 있도록 유통기술이 발달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구요. 그 전에는 구이나 무침으로만 먹었었대요. 그래서 전어는 회보다는 구이가 더 유명한가봐요. 제 개인적으로도 회보다는 구이가 더 좋아요.
전어구이를 맛있게 먹으려면?구운 전어가 나오니까 특유의 고소한 냄새 때문에 우리 뒷자리에 앉아 있던 어르신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리시더군요. 집 나간 며느리가 전어 굽는 냄새에 돌아온다는 옛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이 전어구이를 먹을 때는, 조기 먹을 때처럼 젓가락으로 가시 발라내려고 깨작깨작거리면 안 되구요. 된장을 듬뿍 찍어다가 대가리부터 한 입에 꽉꽉 우겨넣어서 꼬리만 남기고 우걱우걱 씹는 게 제대로예요.
그리고 징그럽다고 대가리나 내장을 떼내서도 안 돼요. 대가리의 고소함과 내장의 씁쓸함이 입 안에서 확 어우러지는 게 전어구이의 진정한 맛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전어의 비타민이나 무기질은 대가리에 죄 몰려 있고, 전어 기름의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불포화지방산은 내장에 다 있다네요. 그러니까 대가리와 내장을 통째로 다 먹어야 살도 안찌고 피부 미용에도 좋아요. 조금만 용기를 내 보세요. 전어구이라는 멋진 음식을 인생의 한 페이지에 추가시킬 수 있어요.
서두르는 게 좋을 걸요저희가 전어 기름에 함뿍 절은 포동한 뱃살을 부여잡은 채 구름다리를 건너 돌아가고 있었는데요. 어느 외국인 관광객 두 녀석이 뚱한 표정으로
"잇 스멜스 라익 크랩…" 어쩌고 하면서 저희를 앞질러 가더군요. 어시장의 비릿한 냄새부터, 어수선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듯한 눈치였어요.
하지만 이곳은 겉보기보다는 훨씬 깔끔한 곳이에요. 우선 항상 깨끗하게 살균한 행주만 쓰도록 되어 있구요. 상인들이 손을 얼마나 자주 씻어야 하는지, 어항의 물은 얼마나 자주 갈아주어야 하는지 세세한 규칙들을 다 정해놓아서 여태껏 콜레라 같은 위생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대요. 믿고 이용해도 되는 곳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