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그룹 ZARD의 고 사카이 이즈미가 사망한 대학병원 병동. 보도진은 병동으로부터 30미터정도 떨어져 있었다.
박철현
1시간쯤 기다리니 경찰이 병동에서 나와 보도진 쪽으로 걸어왔고, 카메라맨들은 일제히 자리를 잡았다. 마이크맨들은 그 앞줄에 질서정연하게 앉았다.
경찰이 먼저 브리핑을 하고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몇시, 언제, 사인(死因) 등 의례 있을법한 질문들이 오고가다가 모 방송기자가 "자살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있는데…"라고 말문을 꺼내었다.
경찰이 "자살이라고 볼 만한 근거가 현재로선 없다" 라고 부인하자 더 이상 질문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경찰이나 관공서의 기자회견·브리핑을 그대로 받아 쓰는 것에 상당히 비판적인 기자이지만, 이 날의 '예의바른' 받아쓰기 자세에 웬지 모른 안심감을 느꼈고, 그 날 이후 사카이 이즈미의 자살설은 사라졌다.
민방 TBS, 자살보도 공개 사과지난 3월 18일 일본의 4대 방송국 중 하나인 TBS의 인기프로그램 <미노몬타의 아사즈바>가 방송내에서 다룬 유화수소가스 심층기획으로 구설수에 올랐다.
일본에서는 2007년초부터 유화수소가스에 의한 자살사건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올해 들어서면서 그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일본 경시청의 통계에 따르면 2007년 한해동안 27건, 사망자 수 29명에 불과했던 것이 올해들어서 벌써 500건을 넘어가고 있다고 한다(2008년 1월부터 5월까지, 489건에 사망자 517명).
유화수소가스는 유황과 수소가 결합할 때 방출되는 독성 가스. 흔히 화산폭발 등 자연현상에서 발견되지만, 자살 희망자들이 밀폐된 공간에서 인위적으로 결합시켜 자살도구로서 사용했던 것이다. 이 사망사건이 올해 3월초에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사회문제화되자 TBS는 유화수소가스 자살을 심층분석한다는 제하에 특집방송을 편성했다.
나도 이 방송을 보았다. 자살사건의 통계표, 유화수소가 차지하는 비율 등 흔히 볼 수 있는 편집으로 넘어가다가 문제의 장면이 등장했다.
"이 유화수소가스를 만드는 방법이 인터넷 상에 공개되어 문제가 되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 직접 유화수소가스를 어떻게 만드는지 구체적으로 실험한 것. 설상가상으로 코너의 마지막에는 "만약 자살한다고 하면 이 정도의 양은 되어야겠죠"라는 코멘트가 등장했다.
방송이 끝난 후 TBS는 시청자들의 엄청난 항의에 몰렸다. 그리고, 그 다음날 TBS는 "어제 방송에서 부적절한 표현·내용이 있었다"고 공식적으로 사죄했다.
일본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