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코람카라코람을 덮고 있는 황량함
이재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바람계곡은 파키스탄의 훈자계곡이 그 모델이다. 훈자계곡은 K2로 유명한 카라코람 산맥에 있는 조용하고 친절한 산골마을이다. 마을 뒤쪽 몇 백 m만 올라가도 만년설이 있으며, 앞에는 인더스강이 흐른다.
훈자에 있어서 돌의 이용은 필수적이다. 물론 근래에 지어진 건물에는 시멘트가 사용되었지만 예전 건물들은 돌과 진흙으로 지어져 있다. 그리고 집과 집 사이의 담이나 빙하물이 흐르는 수로, 산길, 다리 모두에 돌이 사용됐다. 그래서인지 왠지모를 안정감과 푸근함이 온 계곡에 넘친다.
사실 내가 다녀본 40여개 나라 몇 백개 도시 중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 훈자이다. 어느곳에서나 히치하이킹이 가능하고, 밥을 얻어먹을 수 있으며, 휴식처와 전통차를 대접받는다. 분명 이들은 객관적으로 최빈민으로 분류되겠지만 심정적으로는 최고로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세계 최고 장수마을 중 하나기도 하다.
'행복'을 그다지 믿지 않는 과학자들은 훈자마을의 장수비결을 카라코람 빙하에서 내려온 물에서 찾았다. 카라코람(Kara Koram)의 뜻은 현지어로 '검은 바위'라는 뜻이며 그를 타고 내려온 빙하물도 상당히 검다. 유리잔에 받아놓고 보면 시궁창 물과 색감이 비슷하다.
하지만 이 물은 맛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포함된 미네랄이 장수의 비결로 꼽힌다.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하자면 파키스탄인은 카라코람 산맥의 영봉인 'K2'의 뜻이 카라코람(Kara Koram)의 앞글자라 믿는다. 서양인이 지어준 'God win ostin'이나 사이 나쁜 인도측량국의 'K1, K2, K3' 따위의 부호가 아니라….
K2는 공격이나 정복할 대상이 아니다인더스강에서 불과 100여m만 떨어져도 풀 한포기 자랄 수없는 불모지가 된다. 아니 카라코람 산맥 전체가 사막이다. 미야자끼 하야오의 작품 속에서의 '아무것도 살 수 없는 지구멸망 후의 세계'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런 척박한 땅에서 수로를 만들고 식물을 키워 살아가는 훈자인의 정신적 풍요함과 평안함은 바람계곡의 사람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훈자의 평안함에 묻혀 한달을 지내서일까. 냉엄하고 무섭게만 느껴지던 카라코람이 어느 사이엔가 이런 말을 속삭이는 듯했다.
'살아라 모든 생명체야… 살아라 인간아…. 내 사랑스러운 자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