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승룡 원장과 이화백의 '행복한 콧물'
이정환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 그는 대중미술과 순수미술의 경계를 무너뜨린 미국 예술계의 이단아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라식 수술로 잘 알려진 엄승룡(47·눈&아이안과) 원장도 대한민국 안과계의 '이단아'로 불릴 만하다. 의학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겠다고 소장 미술품을 병원에 잔뜩 걸어놨으니 말이다. 그 가치만 무려 20억원 정도라고 한다.
그 중 특히 눈에 띄는 작품은 '행복한 콧물'이다. '행복한 눈물'이 아니다. 독특한 작품 세계로 유명한 이화백(본명 이기섭)이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을 패러디한 '걸작'이다. 엄 원장이 '앤디 워홀의 다른 생각'을 간판으로 걸고 있는 블로그(
http://blog.ohmynews.com/popart)를 통해 '행복한 콧물'이어야 한다고 '진단'한 이유 또한 흥미롭다.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의 젊은 여자 분은 누도관 폐쇄(눈물길 막힘) 환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눈물길이 막힌 것입니다. 원래 눈과 코는 비루관이라는 작은 관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기뻐서 울던, 슬퍼서 울던 눈물이 코를 통해서 콧물로 나오는 것이 정상입니다.그런데 '행복한 눈물'의 여자 분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콧물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보통 누도관 폐쇄는 나이 드신 분에게 많답니다. 젊은 사람에게 아주 드문 누도관 폐쇄라는 진단명을 '행복한 눈물'의 주인공에게 붙이는 것은 너무 잔혹한 것 같습니다. '행복한 눈물'이 '행복한 콧물'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동네 "미쳤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지만…" 25일 강남역 코앞에 있는 그의 병원을 찾아가 봤다. 우선 지나치게 넓었다. 갤러리로 꾸며놓은, 방문객이 대기하는 공간 넓이가 그랬다. '행복한 콧물'을 비롯한 15개의 팝아트 작품이 곳곳에서 다양한 '주제'를 뽐내고 있었다. 일단은, 대한민국에서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곳과 어울리지 않는 무모한 '투자'로 보였다.
엄승룡 원장도 인정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왜 그렇게 넓은 공간을 할애하느냐고, 미친 짓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보다는 "의술만 주고받는,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갈증"과 "내가 일하는 공간을 일부 할애해서 예술을 공유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은 욕심"이 더 컸다고 말했다.
허나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강남역 개원의'에 대한 선입관이 컸다. '그런 취지를 살리기에는 동숭동이 더 낫지 않은가'란 질문을 던지자 엄 원장은 "문화다운 문화가 없고 소비만 있는 불모지에서 새로운 개척자가 되고 싶어서"라 답했고, '병원 홍보를 위한 전략 아니냐'는 까칠한 질문에는 "김태희, 보아 등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들 수술로 지명도도 높였고, 금전적으로도 많은 부를 얻었다"고 응수했다.
엄 원장은 "의사는 도네이션(기부)할 수 있는 기회나 여유가 많은 직업"이라고 강조했다. 생각하기에 따라 도네이션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앞으로도 "그림 몇 점 놓고 갤러리 흉내만 내고 싶지 않다"면서 "주기적으로 전시품을 교체하고 신예 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으로, 나아가 '문학의 밤' 등 행사를 위해서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