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릭샤 10페소(300원)에 협의보고난 후 도착지에서는 10달러(10000원)에 합의했다고 우기는 기술을 특화한 필리핀 릭샤
이재호
마지막으로 릭샤왈라는 그들 자체가 현지의 서민이자 친구이며, 스승이자 바로미터이다.한국에서 정치 9단은 누구일까? 나는 택시기사들이라 생각한다. 마찬가지 이유로 릭샤왈라가 그들의 나라에서는 정치9단들이다.
호기심 많은 그들은(한국의 택시기사들도 마찬가지) 잠시도 여행자의 입을 쉬게 하지 않는다. 한때 잘 나가던 사람도, 못 나가던 사람도 릭샤왈라(한국의 택시기사? 대리운전사?)라는 이름으로 통틀어 일컬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새천년의 시작 즈음에 베트남에서 만난 늙은 릭샤왈라를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영어와 일어에 능통하고, 베트남의 역사, 문화, 경제, 등의 모든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졌고, 깊은 통찰력으로 많은 것을 내게 가르쳐 줬다.
너무나 현명한 그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맥주를 대접하였다. 술자리에서 그는 한국과 관련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여행 전 한겨레신문은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해 많은 보도를 했다. 기사는 한국군 한 명이 죽으면 그 마을 전체 사람을 몰살시켰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고발했다. 그 보도를 흥미있게 봤었기에 조심스레 물었다.
"한국군이 민간인을 베트콩으로 오인해서 많은 무고한 사람이 죽였지요?""나는 세상에서 가장 독한(severe, 이 단어는 잊을 수가 없다) 민족이 베트남인이라 생각해. 하지만 한국인도 같은 수준이야."수백만 동족을 죽인 광기의 베트남인이랑 한국인이 비슷하다는 것에 조금 반감이 있었지만, 뭐라 반박할 수는 없었다. 굳이 베트남에서의 행위만이 아니라 한국전쟁 당시의 일들도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는 뒤이어 전쟁의 참혹함과 광기에 대해서 많이 들려주었다. 마지막은 남북으로 갈린 당시의 베트남과 한국을 비교하며 동질감과 함께 이해를 표시했다.
그리고선 패배한 우파(자본주의)나 승리한 좌파(공산주의)나 사회를 지탱하는 양 다리이건만 한쪽 다리가 다른 한쪽 다리를 부러뜨려 버리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라고 단정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나는 베트남을 사랑한다.
이유가 역사나 문화, 민족성 등이 한국과 너무나 비슷하기 때문이라면 이해할려나. 몇 천년 간의 대중국 항쟁 그리고 그를 통해 지킨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자부심, 강대국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지고 그로 인한 내전, 그 전쟁의 기억으로 인한 좌우의 불구대천 증오심까지. 한국의 쌍동이 형제같이 생각한다.
본론으로 드러가서, 그의 정체를 이야기 하자. 과거에 잘나가던 사람도 릭샤왈라가 될 수 있다고 했지? 그런 경우를 베트남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자본주의 월남이 패망하기 전에는 젊고 패기 넘치는 젊은 기자였다.
양익의 중간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려 애썼고, 그로 인해 다행히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고향인 남월남의 수도인 사이공에서 축출되어 20년간 집단농장에서 강제노동을 하였 다. 늘그막에 고향인 사이공에 대한 향수(아마도 화려했던 과거)를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법을 어기면서까지 고향인 사이공에 돌아왔다. 그러나 불법체류자인 그에게는 누워쉴 수 있는 한 평의 땅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할 수밖에없는 직업 릭샤왈라. 나도 소문으로는 들어봤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고 되물었다.
"당신같은 분이 이 곳에 많은가요?"그는 웃으며 같은 테이블에서 술마시던 친구 릭샤왈라들의 전직을 이야기했다.
"저 넘은 의사였고, 저 넘은 변호사. 저넘은 회사 사장, 저 넘은 대학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