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골목길언덕이 많은 부산 골목길은, 제 고향 인천 골목길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아니, 서민이 사는 동네는 어디를 가나 비슷하면서 푸근하구나 싶습니다.
최종규
막말로, ‘재래시장’을 없애고 ‘쇼핑센터’를 들이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고 합니다만, 쇼핑센터를 짓기까지 쏟아부어야 하는 돈은 돈이 아닌가요. 쇼핑센터를 굴리는 데 들어갈 어마어마한 전기와 자원은 돈이 아닌가요. 물건을 사고파는 시세차익으로 돈을 뽑아내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우리 땅을 고이 일구면서 알맞춤하게 얻고 넉넉하게 나누며 살아가는 일이란 아무 보람이 없을는지요.
더 많은 돈이 아닌 더 넉넉한 사랑이 그립습니다. 더 큰 집이 아닌 더 따스한 믿음이 그립습니다. 더 빠른 자동차와 고속철도가 아닌 더 애틋한 나눔이 그립습니다. 더 높은 이름이 아닌 더 아름다운 마음결이 그립습니다. 똑똑한 사람도 나쁘지 않을 터이나, 착한 사람이 훨씬 반갑습니다. 얼굴 예쁘장한 사람도 싫지 않으나, 다소곳하게 이웃을 헤아리거나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 더욱 고맙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천 배다리 골목길에서는 돈보다는 사랑을, 큰 집보다는 따스한 믿음을 느낍니다. 날마다 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고 ‘동네 마실(제가 사는 집이 골목집이니 사진 찍으러 다니는 일은 동네 마실이 됩니다)’을 다니면서, 둘레 이웃들한테 반가운 사진 한 장 고맙게 얻습니다. 아기자기 꾸민 꽃그릇을 보고, 예술품과 다를 바 없이 매만진 꽃줄기와 벽과 울타리와 문간을 봅니다. 손때 묻은 이름패를 살며시 쓰다듬으면서, 이 땅에서 뿌리내린 사람들 숨결을 느낍니다. 우체통이 비맞아 슬지 말라며 플라스틱 달걀판을 얹은 모습을 보면서, 그저 꾸밈없이 즐기면서 살아가는 맛이 무엇인가를 곱씹습니다. 시멘트 길바닥이지만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아도 발을 다치게 할 병조각이나 쓰레기가 없도록, 골목사람 스스로 아침저녁으로 골목길을 비질하는 그 품새가 거룩하여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아이들은 어른들 따라 배운다고,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오순도순 어울리는 골목집에서 태어나서 자라는 아이들은 이웃사랑과 오순도순 어깨동무를 배웁니다. 이웃이 누군 줄도 모르며 쇠문 철컥철컥 닫아걸고 텔레비전과 인터넷에만 빠져들게 되는 층층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나 하나만 잘 되기’를 배우면서 외돌토리가 되어 갑니다. 아이들이 ‘이름나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야 ‘인생 성공’은 아닐 테지요. 아이들이 ‘이름나고 서울에 있는’ 큰 회사에 들어가 억대 연봉을 받아야 ‘인생 역전’은 아닐 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