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국립박물관
이중현
어라? 그런데요. ‘박물관은 다리만 아프고 재미도 없고... 종로에서 스파게티가 맛있는 레스토랑 내지는 강남에서 사람 구경하기 제일 좋은 2층 통유리 카페 이런 거나 하지’ 하는 소리가 막 들려와요. 뭐,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네요.
서희, '영업은 말발 좋고 똑똑한 녀석에게 시켜야 한다'는 교훈 줘 하긴 박물관 그런 데를 누가 가나요. 하지만 고지식하다고 백스페이스 누르기 전에요. 우리가 박물관에 가 봐야 할 필요성을 한번만 봐 주세요.
박물관에 왜 가야 하느냐면요, 웃기지도 않지만, 우선 '있어 보인다'라는 게 첫 번째 이유가 될 수 있겠어요. 휴일을 맞아 박물관을 찾는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일단 멋있잖아요. 뭔가 지적이고 교양 있어 보이고 '싸이월드' 사진첩을 더 품격 있게 꾸밀 수도 있죠. 당구장 가서 자장면 시켜먹는 거보다 훨씬 나아요.
다른 한 가지로는… 음… 이건 역사 선생님이나 하시는 게 어울릴 법한 말이긴 한데요. '역사는 미래를 준비하는 밑거름이다'예요. 태정태세문단세 예선연중인명선 하면서 망한 왕가 족보나 줄줄 외우는 건 제대로 된 역사공부라고 할 수 없잖아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과거로부터 배울 만한 걸 배우는 게 진짜 역사공부죠.
당과 손잡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긴 했어도 만주 땅은 당나라놈들한테 다 뺐긴 거 아시죠? 이런 역사가 있어서 우리가 '집안 싸움에 남을 끌어들여서 좋을 것 하나도 없다'라는 교훈을 얻은 거예요.
그리고 고려를 침범한 거란군에게 서희가 협상 잘해서 되려 옛 고구려 영토를 되찾은 역사가 있었잖아요. 이로 인해 '영업은 말발 좋고 똑똑한 녀석에게 시켜야 한다' 하는 지혜를 얻을 수 있었구요.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예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요. 데이터 베이스를 잘 축적해서 똑같은 실수만 반복하지 않아도 최소한 중간은 갈 수 있어요.
음… 별로 설득력이 없었나요? 하긴 우리가 무슨 역사학자도 아니고, 박물관에 있는 도자기나 왕관 같은 걸 본다고 해서 없던 지혜가 '짠'하고 생기는 건 물론 아니지요. 차라리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얻은 단편적인 지식들을 어렴풋이 조립해 나가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박물관의 유물들은 우리 역사의 생생한 증거물이고, 과거를 보여주는 열쇠예요. 백제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직접 보고 나서야 일본 국보 1호 광륭사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보더라도 '이거 뭐야 똑같잖아. 한국산 소나무로 만든 거래매? 우리 것 가져와서는 국보 1호로 모셔 놨구만. 오호라 일본애들 쪽 팔리니까 요즘은 국보에다 번호 안 붙인다지?' 하면서 진심을 담아 비아냥거릴 수가 있게 되는 거예요.
게다가 진퉁이잖아요. 오리지널이에요. 저 때깔 고운 고려청자 한 번 볼까요? 저게 '귀주대첩' 강감찬 장군이 쓰던 요강인데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어수선할 때 마당쇠가 들고 튀었던걸, 나중에 나까무라 총독이 이완용 셋째 아들로부터 선물 받았다는 식으로다가 1000년 역사의 순간 순간이 고스란히 담긴 녀석일지도 모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