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종철 열사 20주기를 맞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 건물에 걸린 고인의 걸개그림.
오마이뉴스 권우성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
어제 대학생이 된 딸과 함께 <에덴의 동쪽>(이하 '에덴' 표기) 드라마를 보다가 동욱(연정훈 분)이 남영동 대공분소에 끌려가는 것을 보고, 뜬금 없이 딸에게 민주화열사 故 박종철군을 아느냐고 물어 봤습니다. 그랬더니 딸은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누군데요?" 하며 당연히 모른다는 뜻으로 대답하는 것을 보고 한편으론 기분이 씁쓸했습니다.
우리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자유를 누리고 사는지도 모르고... 딸에게 조금은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같은 동시대에 살면서 몸소 민주화 항쟁을 보고 느끼고 살았던 사람이기에 드라마의 한 장면이지만 물고문 장면을 보는 순간 몸이 파르르 떨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번주 에덴에서는 동욱이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요원들에게 남영동 대공분소로 강제연행되어 물고문을 당하는 장면이 방송되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이상하게 87년 박종철씨 고문치사사건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역사의 아픔이고, 또 잊어서는 안될 사건이지만 점점 더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남영동 대공분소 자리는 지난 6월 일부 시설을 리모델링해서 박종철기념관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박씨가 지난 87년 고문을 받다 숨진 509호 조사실엔 박씨의 영정과 물고문을 하던 욕조, 침대, 조사용 책상 등이 갖춰져 있습니다. 에덴에서 동욱이 신명훈(박해진 분)의 계략에 의해 대공요원들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듯, 박종철씨도 그렇게 고문을 당하다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박종철씨의 죽음으로 인해 민주화 불꽃이 활활 타올랐고,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이만한 자유를 누리고 사는건 아닌지 새삼 고마운 생각을 하며, 실제 사건과 드라마를 한번 비교해 보았습니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남영동 대공분소1987년 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아 중앙일보 사회면에 평범한 기사 한 꼭지가 실렸습니다.
"경찰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하의 이 기사 하나는 일파 만파로 파장이 커져 나갔고, 부검을 맡은 황적준 박사(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법의학과장)는 사인을 심장마비로 해달라는 서슬퍼런 공안당국의 협박을 뿌리치고 '물고문 도중 질식사한것 같다"고 양심선언을 합니다.
물고문에 의해 죽은 박종철군은 당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언어학과 학생회장)에 재학중이었습니다. 세칭 '남영동 대공분소'는 고문의 상징장소였습니다. 치안본부 요원 6명에 의해 강제 연행된 박종철군은 집회 및 시위혐의로 수배중이던 선배 박종운의 행방을 대라며 모진 고문을 해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실제 선배가 두 차례나 박종철군의 집을 다녀갔지만 모른다고 잡아 떼다가 결국 가혹한 물고문에 의해 희생되고 맙니다. 박종철씨의 죽음은 그후 6월 민주화항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