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열 환경재단 대표에 대해 검찰이 출국금치 조치를 내린 것과 관련해 시민사회 각계인사들이 24일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의 시민사회 죽이기, 표적수사를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남소연
"수십 년 환경운동 해온 내게 검찰이 '비리 올가미'를 씌우고 있다. 언론에 따르면 검찰은 금명간 나를 소환조사한다는데, 정작 당사자인 나는 소환장도 못 받았다. 느닷없는 검찰의 정부보조금·기업후원금 유용의혹 수사는 내 인생 최대의 명예훼손이다."정부 보조금과 기업후원금 횡령 혐의로 출국금지된 최열(59) 환경재단 대표는 23일 전화통화에서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검찰의 혐의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최 대표는 조만간 변호인단을 구성, 종합 대응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지난 8일 환경연합에 대한 검찰의 전격적인 압수수색 이후, 시민사회 내부에서는 이 수사의 칼끝이 시민운동의 상징적 인물을 향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대표적 시민운동가 최열 등에게 이미지 타격을 입히고, 시민운동에 도덕적 흠집을 내는 게 이 수사의 목표라는 추론이었다. '회계실수'를 '비리'로 몰아세울 가능성도 높다고 내다봤다.
실제 환경연합 전직 활동가 2명의 횡령의혹으로 시작된 이 사건이 최열 전 환경연합 대표 문제로까지 확대되면서, 시민운동 진영은 이명박 정부가 사정기관을 동원해 '보조금'을 고리로 '시민사회 죽이기'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정책 사업들에 시비 거는 불편한 존재들에게 일단 도덕적 타격을 입히고, 한편으로는 시민운동의 진을 빼 무력화하려는 데 초점이 가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국민혈세 도둑질은 환경오염 주범만큼 나쁘다"이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는 것이 바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이다. 한나라당은 23일 논평을 통해 "검찰이 환경연합의 정부보조금과 기업후원금 횡령의혹을 수사하는 가운데 일부 자금이 최열 전 대표의 개인계좌로 흘러간 정황을 포착했다"며 "국민혈세를 도둑질하는 것은 환경오염 주범만큼 나쁘다"고 힐난했다.
이어 한나라당은 "조그만 구멍가게라도 사장이 바뀌면 통장 명의도 바뀌게 마련인데 나라의 환경을 감시하는 단체 대표가 바뀌었는데 명의 변경을 하지 않은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최씨는 더 이상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하지 말고 숨겨진 진실을 국민 앞에 낱낱이 고하라"고 충고했다.
또한 "검찰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간판만 있는 유령 시민단체와 국민 혈세를 낭비한 사이비 시민단체를 발본색원해 국민에게 건전한 시민단체를 되돌려주라"고 제언했다.
<문화일보>는 20일자 오피니언 기사를 통해 "환경연합이 정부 보조금을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영수증 철조차도 갖추지 않고 있음이 드러났다"며 "정부 보조금은 먼저 신청한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나돌 만도 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 신문은 "신청 목적 이외의 용도로 보조금을 사용한 시민단체는 보조금 회수를 철저히 하고 상당기간 신청자격을 제한하는 조치도 필요하다"며 "시민단체는 횡령에 대한 수사를 정치적 탄압이라고 반발할 게 아니라 도덕성을 재점검하라"고 질타했다.
<조선일보>는 18일자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시민단체들이 10년간 정부로부터 621억원의 국고보조금을 받았다"면서 "일부 시민단체는 이를 어디에 썼는지 증명할 수 있는 관련 영수증을 제대로 보관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국민세금으로 나가는 시민단체 보조금은 '눈먼 돈'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며 검찰의 환경연합 수사에서 이 같은 사실이 확인됐다고 적시했다.
이 신문은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환경연합을 압수수색했지만 영수증을 모아둔 영수증 철이 없었고, 환경연합 실무자에게 물었더니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환경연합 같은 대표 시민단체가 회계 관리는 엉망이었다고 비판한 셈이다.
이와 관련, 환경연합은 이 같은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보도에 대한 명예훼손과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준비 중이다.
환경연합은 24일 발표한 논평을 통해 "한나라당의 막말논평이 점입가경"이라며 "정치적 목적의 의도적 흠집내기와 한나라당의 반복적인 매도까지 용인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한나라당은 수사 중인 사건에 결론부터 내리는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한다"며 "최열 전 대표가 사업비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18일자 <조선일보> 보도와 관련해서도 "환경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에 가하는 음해와 덮어씌우기가 도를 넘고 있다"며 "증빙서류 일체를 이미 국가기관에 제출했던 우리 단체를 서류 사본을 보관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가짜 영수증' 운운하며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들은 "<조선일보>의 보도방식도 떳떳하지 못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확인할 수 없는 검찰 관계자의 실명 없이 보도한 것은 문제이며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면 허위기사를 날조하고 있다는 비난을 비켜가기 어렵다"고 쐐기를 박았다.
<문화일보> 등에 대해서도 환경연합은 "<조선일보>의 허위기사를 퍼나르는 행위"로 규정하고 "영수증철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답변했다는 보도 자체가 거짓"이라며 "행정안전부에 제출한 증빙서류 원본을 돌려받지 못했다"고 분명히 했다.
<문화일보> 등은 기사작성의 기본인 사실확인부터 제대로 해야 하고, 기초적인 사실조차 왜곡해 음해와 덮어씌우기로 일관하는 <조선일보>의 태도를 그대로 흉내 내려 든다면 시민단체 죽이기에 가담하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간주하고 응분의 대응을 해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환경연합의 문제를 시민단체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하면서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고 있다는 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시민단체가 621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아 '영수증철도 없이' 썼다고 보도했지만, 정작 이들이 타깃으로 삼는 정부·기업 감시운동 단체 가운데는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이 제정된 99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은 참여연대는 물론, 함께하는시민행동도 신청하지 않았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 따르면, 경실련도 2003년부터 정부 지원금을 받지 않으며, 녹색연합도 2000년부터 재정자립 원칙을 세워 지자체 교부금이나 행정안전부(옛 행정자치부) 공익사업에 응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