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은 큰 애와 작은 애. 영주 부석사에서 부처님 손모양을 흉내내고 있다.
김은주
우리의 대화는 남편이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면서 끝났습니다. 그러나 참 유익한 대화였습니다. 13년을 살아오면서도 안 것보다 이번 수학여행 얘기를 하면서 알게 된 남편이 더욱 살가웠습니다.
내가 함께 사는 사람이 품성이 꽤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수학여행을 못 보낼 정도로 무능한 부모지만 부모가 주지 못한 것에 마음을 주지 않고 오히려 부모가 준 것에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가는 효자라는 사실을, 그래서 더욱 남편을 존경하게 된 저녁이었습니다.
퍼즐 조각이 제대로 끼워 맞춰져 한 편의 그림이 되듯 남편과 시댁에 대해 알고 있던 조각조각의 이야기들이 이제야 꾸러미를 꿰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남편은 일찍 철이 들었습니다.
젊었을 때 시아버지가 노름이니 술이니 해서 돈을 다 없애며 어머님 속을 썩혔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가족을 돌보기보다는 밖으로 나돌며 친구 좋아하는 아버지를 둔 아들은 가난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수학여행도 못 갔던 것입니다.
남편이 부유한 집에서 산 건 아니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가난하다고는 생각 못 했는데 수학여행을 못 갔다는 말을 듣고야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갔고, 그간 남편이 보여준 지나친 절약정신이라든가 부자에 대한 열등의식도 이제 조금은 이해가 갔습니다.
그런데 내가 남편을 훌륭하다고 한 건 아버지의 유흥 때문에 자신의 어린 시절 잃은 게 많은데도 그걸 원망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어떤 아들보다도 아버지에게 고마워했습니다.
소풍 갈 때 500원만 줘도 되는데 천원을 주셨다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장남이라고 더 좋은 옷을 사주었다고 자랑하곤 해서 어머님이 말씀하시는 아버님과 남편이 평소 말하는 아버님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들려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이번 수학여행 사건으로 어머님이 말씀한 아버님의 모습이 더 사실에 가깝고, 남편은 아버님의 좋은 모습만 기억하는 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던 것입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몇 년을 울며 살았던 시아버지남편은 부모가 자기에게 주지 못한 것에는 아예 마음이 없고 준 것에만 마음이 가는 효자 유전자를 타고 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남편은 어디 가서 맛있는 거 먹을 때면 어김없이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아버지 한 번 데려오면 참 좋아하시겠다고, 아버지에게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 마음이 역력하게 느껴졌습니다. 여행을 가도 아버님을 생각하고, 뭔가 좋은 걸 접하면 어김없이 아버님을 떠올렸는데 참 신기한 게 어머님이 아니라 말썽꾸러기 아버님을 떠올린다는 것입니다.
남들 다 가는 수학여행을 못 보내주고, 대학 갈 때도 등록금으로 노름한다고 다 날려서 혼비백산하게 한 그런 아버지에 대해 웬 정이 그리 깊은지 참 신기했습니다. 오히려 수학여행 다 가고 등록금 걱정을 안 해 본 난 엄마가 나에게 주지 않은 것에 더 마음이 가서 지금도 그런 게 한으로 맺혀있는데 남편의 행동은 참 미스터리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시아버지가 비록 가족에게 무관심한 무능한 가장이었지만 지극한 효자였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남편이 어려서 부모님의 행동을 지켜보고 판단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효자였던 아버지의 유전자가 자식에게 유전됐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아버님은 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매일 울었다고 합니다. 장가들어 자식까지 낳은 다 큰 아들이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리워 눈이 짓무르도록 몇 년을 그렇게 울었다는 건 효자가 아니면 보일 수 없는 행동이지요.
아버님이 효자라는 건 어머님도 인정하셨습니다. 시할머니가 화를 내시면 아버님은 어머니의 화가 풀릴 때까지 무릎 꿇고 앉아 싹싹 빌었고, 자기 벌어온 돈은 꼭 시할머니에게 보여주고야 썼다는 등 여러 가지 정황을 봤을 때 아버님은 효자가 확실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 어머님 우리 어머님'하는 아버님을 보면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신에 대한 경배와 그다지 다르지가 않습니다. 조선시대 사회를 지배했던 손가락이라도 잘라서 부모를 봉양하려 했던 효의 정신을 난 우리 아버님에게서 엿볼 수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효자 유전자라는 보배를 가진 꽤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저녁이었습니다. 큰 딸 또한 효자 유전자 이어받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불쌍하다며 눈물을 흘린 큰딸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없으면 잠을 못 잘 정도로 아버지를 좋아했습니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이런 좋은 품성을 가진 가계에 시집 온 것에 감사하게 된 훈훈한 저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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