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관문' 산해관
김광수
"산해관은 천하제일관문이다. 어찌 천하의 주인이 되려는 자가 샛문으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희생이 따르더라도 관문을 통과 할 것이다."홍타이지가 선을 그었다.
"본대가 북경에 들어가기 앞서 탐색전을 실시한다. 다라를 대장군으로 삼고 호격을 부장으로 삼아 기내팔고산(畿內八高山), 한인팔고산(漢人八高山), 몽고팔고산(蒙古八高山)을 줄 터이니 군병을 두 길로 나누어 북경을 정벌하라."홍타이지의 명령이 떨어졌다. 명나라군의 군세를 시험하기 위한 탐색전이니만큼 젊은 장수를 선발했다. 다라는 홍타이지의 동생이고 호격은 아들이다. 그동안 도르곤의 전공에 기가 죽어있던 장자 호격의 사기를 살려주기 위한 배려도 깔려있다.
정예 8기군 정홍군, 양백군, 양남군을 지휘한 두 장수는 승덕을 통과하고 장자령을 넘어 만리장성을 돌파했다. 장성을 경비하던 명나라 군은 8기군 깃발을 보고 혼비백산 도망가기에 바빴다. 장성을 지나 북경에 이르는 길은 텅 비어있었다. 청나라 군은 질풍노도와 같이 북경 외성에 당도하여 동편문과 좌안문을 부수고 내성으로 진입했다.
북경은 자금성, 황성, 내성, 외성으로 이루어진 요새북경은 자금성, 황성, 내성, 외성으로 이루어진 요새다. 하지만 지키려는 의지가 없는 군대가 방어하는 요새는 모래성이나 다름없었다. 청나라 군은 명나라 39진(陣)을 격파하고 3부(府) 18주(州) 67현(縣)을 손에 넣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다.
청나라 군은 노왕(魯王) 주이패, 낙릉왕(樂陵王) 주홍식, 동원왕(東原王) 주이원을 주살하고 그 외 6왕을 목 베었다. 팔기군은 탐색전이니만큼 더 이상 진출하지 않고 퇴각했다. 돌아오는 청나라 군은 92만 명의 포로를 끌고 왔다.
청나라 군에 일격을 당한 숭정제는 망연자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외성에 진동하는 팔기군의 말발굽 소리는 숭정제의 숨을 멎게 했다. 변방의 오랑캐라 얕잡아 보던 청나라가 북경을 넘보고 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이었다. 남쪽에는 이자성의 반란군, 동쪽에는 청나라의 팔기군, 북경은 절해고도와 같았다. 숭정제는 주연유를 불렀다.
"내가 한 말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각별히 입조심 하고 오랑캐를 추격하라."퇴각하는 청나라군을 추격하라는 것이다. 주연유는 아리송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황제가 내전으로 은밀히 불러 "남경으로 천도를 준비하라" 했는데 추격은 웬 추격이냐는 것이다.
숭정제는 비밀리에 남천을 생각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천계제의 비 의안황후 장씨가 반대하여 무산된 바 있다. 불발된 남천이 궐 밖으로 새나가면 신하들을 장악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