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곰취오늘 현재도 곰취 크기가 이 모양이다. 옆 피나물에 치일 정도다. 큰 비가 쏟아지면 맥없이 쓰러질 정도이며 해가 많아도 걱정, 그늘이 많아도 걱정이니 이를 어쩔 거나. 내년 봄에나 구실을 할 수 있을까 몰라.
산채원촌장
암담했다. 당장 모종확보가 문제다. 산채원이 종자를 받을 목적으로 따로 심어둔 것은 기껏 5천주에 지나지 않는다. 제철인 오뉴월 봄이라면 돈만 주면 쉽게 구할 수도 있지만 추석 무렵이라 백방으로 뛰어봤자 그게 말같이 쉬운 게 아니다.
먼저 정선에 있는 산사랑산채원(대표 전연택)에 도움을 요청했다. 몇 차례 통화를 하였지만 난감하단다. 한 달만 일찍 말했다면 협조가 가능한 일이지만 때가 때인지라 모종이 동이 나서 어쩔 수가 없다는 거다. 더군다나 이미 비싼 인건비 들여 정식을 했으니 그걸 다시 뽑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나는 몇 가지 정황을 더 자세히 설명했다. 같이 돌아본 산업계장과 내가 내린 판단은 전체에서 10% 밖에 생존하지 않았다는 점, 아무리 서둘러 모종을 보내라고 했지만 심기에 적당하지 않을 만큼 모종 상태가 너무 어렸다는 점, 이번 기회를 무사히 넘기지 못하면 내년 사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하루 말미를 줄 테니 물량을 점검하고 답변해주기를 기다렸다. 추석 연휴 전날 4천주 가량 가능하다는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아직 계산하지 않은 여러 모종 값 1100만원을 완불하였다.
대개 사업을 하다보면 잔금을 조금은 남겨야 안전하다고 하지 않던가. 심사숙고 끝에 상대를 진심으로 믿고 전액을 보내기로 결단을 내렸다. 산사랑산채원 전연택씨가 약속한 추석이 지난 목요일에 무사히 모종이 도착한 걸 확인하고 보내야 하는 절박한 심정이었는데도 말이다.
다소 찜찜한 추석 연휴를 보내는 건 내가 선택한 일이다. 처갓집에 가서도 곰취 모종 구할 방법을 찾느라 장수군 일대 산을 온종일 오르락내리락했으니 이 얼마나 몸과 마음이 고단했을까.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면사무소와 약속한 추가분 1만 5천 주를 채우기 위해서다. 다급한 마음에 지리산삼영농조합과 곡성장에서 만난 남원 수지 할머니께도 연락을 드렸다.
우주왕복선을 쏘아 올리기 위해 카운트다운에 들어가듯 하루하루 손을 꼽아가며 날을 보냈다. 드디어 수요일 아침! 더는 기다릴 수 없어 강원도로 전화를 했다. 조금 오래다 싶더니 "전원이 꺼져있어 통화할 수 없습니다. ~~~"라고 나온다.
'어! 이건 아닌데!'
재차 삼차 걸어도 마찬가지다. 이젠 일반전화로 걸어봤다. 똑같은 소리만 들린다.
'아차!'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다섯 번 시도했지만 손전화와 집전화까지 끊겨있다. 따로 전화가 있을지 몰라 033-114로 전화번호를 찾았지만 같은 번호 뿐이다. 명절을 잘못 보내기라도 한 건가. 암담했다. 후회스러웠다. 모든 일을 멈추고 화순에서 정선까지 갔다와야할 지도 모른다.
'사람을 믿는 것까지는 좋지만 100% 다 믿으면 안 되는데 나는 왜 늘상 이런단 말인가.'
'이럴 사람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