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찌빠의 신문수 선생
이정환
- 최근 클로버문고를 복간하려는 '클로버 문고의 향수' 회원들과 만났다.
"'로봇 찌빠' '도깨비 감투' 골수팬들 40명 정도가 왔더라. 술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로봇 찌빠'가 그려진 케이크도 받았다. 공을 많이 들였더라. '선생님, 사랑합니다'는 말, 참 기분 좋더라고. 인사동에서 사인하는 종이를 따로 사서 회원들에게 사인을 모두 해줬다. 정말 좋아하더라. 오래된 만화를 아직 보물처럼 여겨줘서 정말 고마웠다. 옛날 만화책들 어떻게 다 구해서 사인해 달라는지… 그 나이들 먹어서 옛날 만화책 좋아하는 걸 보면 마누라가 웃지(웃음). 이제 40대 언저리 아닌가. 그런데도 굉장히 순수한 사람들 같더라."
- 회원들이 편지에 어떤 이야기가 많던가."이제 나이도 있고, 몇십 년 지나지 않았나. 오프라인에서 내 작품을 접할 기회가 드무니까 요즘도 일하느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
- 그렇지 않아도 근황이 궁금하다. 평소 하루 일과는?"낚시나 골프 등 레저잡지나 사보 등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보통 집에서 새벽 6시에 나온다. 작업실에 도착해서 일을 시작하는데, 장편 작업은 아니라서 낮 12시가 되면 마감이 거의 끝난다. 나이 먹어서도 심심찮게 매일 일할 수 있어 행복하다."
- 요즘 작품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캐릭터는 무엇인가. 로봇 찌빠도 아직 등장하나."사보에는 30대 초반 직장인 '오동추'를 주인공으로 많이 쓴다. 로봇 찌빠도 쓸 때가 있지만, 아무래도 교육용 만화에 적합한 캐릭터다. 작년에는 반도체 제조 공정을 소개하는 만화를 그렸는데, 마침 로봇이다 보니까 딱 맞는 캐릭터더라. 찌빠는 여전히 살아있다."
"만화만 그린 나, 아쉽고 슬프다"
- 로봇 찌빠가 탄생한 것이 1974년이다. 로봇은 상상에서나 가능한 시절 아니었나. 어떻게 구상했는지 궁금하다."'마징가 제트' 같은 거대 로봇이 로켓·광선 등을 쏘면서 악당들을 물리친다는 이야기가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덩치가 어마어마하니 어린이들과 방에서 함께 놀 수 없다. 또 주인공 생각대로 로켓을 발사하는 것이지, 로봇 스스로의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까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없다.
싸우는 것만 로봇 능력이냐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어린이만한 덩치에 인간과 가까운 지능을 갖고 있는 로봇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만화 속에서 팔팔이(로봇 찌빠에 등장하는 인간 주인공)는 형제가 없다. 외로워하는 팔팔이의 친구로 등장시키자고 생각했다."
-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캐릭터라 더욱 친근감이 느껴진다."로봇 찌빠는 완벽하지 않다. 미국 전자회사의 실패작으로 실수도 하고 엉뚱한 짓을 한다. 그게 더 재미있는 것이다. 팔팔이보다 찌빠가 훨씬 머리가 좋으면 독자도 기분 나쁘지 않겠나(웃음)."
- 로봇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로봇태권브이만큼 조명을 받지 못했는데."산업적인 면으로 키웠으면 찌빠도 둘리나 태권브이만큼 많이 활동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냥 만화만 그렸지, 그런 산업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물론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 로봇 찌빠가 사보나 교육만화에만 등장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가장 아끼는 작품도 로봇 찌빠로 알고 있는데."사실 슬프다. 만화 주인공이라면 지면에서 독자들과 만나야 하는데…. 지금 만화잡지 다 없어지지 않았나. 마음이 아프다. 정부는 무슨 '자동차 몇십만 대 효과' 운운하며 만화산업이 굉장히 비전 있다는 식으로 말만 하지 말고, 만화적 소프트웨어를 꽉꽉 채울 수 있는 지원을 해야 한다. 작가들이 활동하고 발표할 수 있는 장이 있어야 좋은 만화가 나오지 않겠나. 좋은 만화가 나와야 그걸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산업도 활발해질 수 있다.
요즘 애니메이션을 통해 갑자기 탄생하는 캐릭터들이 있다. 신문이나 잡지에 쭉 연재되지 않고, 갑자기 하나 만들어진다. 그것도 성공할 수 있지만, 만화를 통해 독자를 확실히 확보해놓은 캐릭터, 역사 있는 캐릭터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질 때, 성공 확률이 더 높다. 만화 산업을 키우려면, 출판만화부터 살려야 한다."
"된장·간장 같은 만화를 그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