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종교편향 강경대응 기조 풀리나

어청수 경찰청장 퇴진 요구 등 사실상 철회

등록 2008.09.21 14:48수정 2008.09.2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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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정부의 종교편향에 항의하며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를 열 계획이던 불교계에 변화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조계종 관계자는 21일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 등으로 나라 경제가 어렵고 사회적 불안감마저 생기는 상황에서 종교 문제로 국민의 마음을 더 무겁게 해서는 안된다고 본다"면서 "종단은 앞으로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가면서 종교편향 문제를 풀어가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의 종교편향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기 위해서는 특정인에 대한 처벌보다 입법 추진이나 종교차별 감시기구 설립 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쪽으로 종단 내부 의견이 정리돼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어청수 경찰청장에 대한 퇴진 요구 등을 사실상 철회한 것으로 보이는 종단 관계자의 이 같은 전언은 지난달 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의 범불교도대회를 주도하는 등 불교계 최대종단인 조계종이 그동안 유지해온 대정부 강경 투쟁 기조에서 한 발짝 물러서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불교계는 그동안 정부의 종교편향을 지적하며 ▲대통령의 사과 ▲어청수 경찰청장 파면 ▲공직자 종교 중립 입법화 ▲시국사범 수배해제 등 4개 항을 요구하면서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추석 이후 영남권을 시작으로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 전국승려대회 등으로 항의 수위를 높여 나가겠다는 뜻을 밝혀 왔다.

 

그러나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을 비롯해 태고종, 천태종, 관음종 등 주요 종단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난 10일 대구 동화사에서 열린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 개최 간담회' 이후 불교계의 대정부 강성 기류는 조금씩 누그러지는 기미를 보여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9일 국무회의에서 "본의는 아니겠지만 일부 공직자가 종교편향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그런 언행이 있어서 불교계가 마음이 상하게 된 것을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힌 직후여서 불교계 지도자들도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를 강행하겠다고 주장하기엔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래선지 동화사 회동 직후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 개최에 대한 불교계의 어조는 '강행'에서 '준비 작업 착수'로 완화됐다.

 

불교계의 이런 기류는 정부 쪽에 전해져 종교정책을 담당하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불교계가 제기하고 있는 종교편향 문제가 추석 이후 원만히 풀릴 것으로 낙관한다"고 말했다.

 

신 차관은 이어 "종교편향 문제는 어느 쪽이 다른 쪽을 이기는 파워게임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잘못을 고치는 것"이라며 "불교계가 추석 이후 열기로 했던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의 구체적 일정을 잡지 않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 여지가 있다고 본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조계종은 오는 24일 중앙종회 회의와 26일 교구 본사 주지회의 등 종단의 공식 의결기구를 통해 종교편향 문제에 대한 향후 대응 방침을 정리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어 조계종 등 27개 종단이 소속된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30일 관련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어서 몇 개월째 계속돼온 종교편향 논란이 이르면 이달 중 수습 국면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앞서 17일 열린 조계종 총무원 부·실장 및 국장 스님들과 팀장급 종무원 등 20여 명이 가진 간담회에서 "종교편향 문제는 국민이 공감하는 수준에서 종단의 행동방향과 입장을 조정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장 정만스님은 "어청수 경찰청장의 경우 촛불집회에 대한 강경진압 등으로 지탄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편향적 행동을 했다고 보진 않는다"면서 "종교편향 문제는 어느 개인을 미워하거나 처벌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관련법 제정 등을 통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며, 수배자 문제도 국민화합을 위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선처해야 한다는 것이 종단의 요구"라고 말했다.

 

이어 "총무원 간부급 간담회에서 불교계 4개 요구사항과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 개최 등을 놓고 강·온 대립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대정부 대응방침을 완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면서 "다만 총무원의 분위기가 이렇다고 해서 종교편향 문제에 대한 종단의 입장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므로 내주 열릴 중앙종회와 교구 본사 주지회의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조계종 관계자는 "종단의 이 같은 기류 변화에 대해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 진보성향의 단체에서 일부 반발하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이런 점을 감안해 지역별 범불교도 대회를 열더라도 특정인사의 퇴진 요구 등 세속적으로 비칠 있는 집회가 아니라 승가의 전통에 따른 참회 법회를 여법하게 봉행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ckchung@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8.09.21 14:48ⓒ 2008 OhmyNews
#종교편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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