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장황후. 홍타이지의 계비이며 도르곤의 연인이다. 또한 순치제의 생모다.
이정근
생명이 촛불처럼 점점 타들어 가는데 후계를 정하지 않은 홍타이지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청나라의 황제는 홍타이지이고 실력자는 도르곤이다. 홍타이지에게는 장자 호격이 있다. 호격은 사망한 효단황후 소생이지만 장성하여 전장에 나가 전공을 세우고 있다. 홍타이지가 사망하면 도르곤과 호격의 격돌이다. 1차전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시동생과 연인? 그러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현 황후 장비소생 복림이 있다. 복림은 비록 다섯 살 어린애지만 술수에 능한 생모가 살아 있다. 또한 장비와 도르곤은 공적으로 형수와 시동생이지만 사적으로 연인이다. 야심이 많은 장비는 만주벌판의 여우 범문정을 손아귀에 넣었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홍타이지는 전쟁 승리에 취해 있었다.
용골대의 의료진 차출을 명받은 조정은 어의 유달과 약의(藥醫) 박군을 보내 홍타이지를 치료하게 했다. 어의와 침의가 심양으로 떠나는 날, 인조는 어의 유달을 비밀리에 내전으로 불렀다.
“언제 죽겠는지 내밀히 알아보라.”어의 도착과 함께 영중추부사 강석기의 부음이 심양에 전해졌다. 아버지의 사망소식을 접한 빈궁은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청심원 2알을 복용하고 겨우 정신을 차렸다. 세자관은 오례의(五禮儀)에 의해 발상했다. 숙포(熟布)와 최복을 모두 지어라 지시한 세자는 관원들에게 명했다.
“이는 막중한 예이므로 한 점 착오가 없어야 한다. 정묘년에 서평부원군의 상 때의 예법이 본받을 만하나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상례에 참례했던 최정승과 김판서가 마침 여기에 있으니 자문을 구하고 때마침 좌상 심기원도 동관에 와 있으니 모두의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라.”명을 받은 관원이 최명길과 김상헌이 옥살이 하고 있는 북관을 찾았다. 옥살이에 몸이 피폐해진 김상헌과 최명길은 걷기는커녕 몸을 가누지도 못했다. 관원들이 업어 세자관으로 왔다. 세자관에 도착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못하고 되돌아갔다. 소현은 사서 이정명을 북관에 파견하여 자문을 구하도록 했다.
“오례의의 본문에 ‘시자(侍者)는 최복을 입는다.’ 라는 문장이 있으나 그 아래 소주(小註)에는 ‘풍속에 따라 거친 배 허리띠를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품속을 파고드는 귀인 조씨최복은 오복(五服) 중 가장 무거운 등급의 참최다. 한편, 강석기의 사망을 접한 조정은 술렁거렸다. 강석기는 세자의 장인이다. 하지만 세자는 심양에 있다. 강석기의 장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설왕설래 의견이 많았다. 귀인 조씨가 인조의 품속을 파고들었다.
“영충추부사가 죽었다면서요?”“그렇소. 아까운 인물이오.”“세자빈은 심양에 있지를 않습니까?”귀인 조씨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월당은 빈궁의 아버지이기도 하지만 우의정을 지낸 나라의 기둥이오. 세자와 빈궁을 보지도 못하고 죽었으니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 주어야 할 것이오.”“세자와 세자빈이 돌아올 입장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번거롭게 해야 할 이유가 없지를 않습니까?”품 속에 파묻혀 있던 귀인 조씨가 인조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튿날, 예조가 인조에게 계청했다.
“오례의에 따라 13일 동안 공무를 정지하고 애도를 표하는 일이 가한 줄로 아룁니다.”“빈궁이 지금 이국에 있으므로 압존(壓尊)해야 할 일이 없으니 공제의 예는 거론하는 것이 마땅치 않을 듯하다.”인조의 태도는 싸늘했다. 예상밖이었다. 사헌부가 재차 주청했다.
“길흉의 예는 각기 한 시대의 제도가 있습니다. 세자가 불행히 심양에 계시기는 하나 거리가 멀다는 이유로 구별이 있을 수 없고 저곳에 계시거나 이곳에 계시거나 압존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제도를 다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듣기 싫다.”인조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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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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