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개통된 칭짱철도의 라싸 역사
이매진피스 조완철
눈이 부시도록 빠른 속도로 개발과 발전이 밀려드는 라싸, 그러나 그 라싸의 오랜 주인인 티베트 사람들이 설 땅은 너무 좁고 가파른 것이었다. 티베트에서 관광업을 하며 살아가는 한 한국인의 말을 빌리면 "1997년, 300만원 정도였던 건물의 값이 지금은 100배가 올라 3억을 호가하고, 칭창 철도가 개통된 이후에만도 2~3배가 올랐다"고 했다.
라싸 시내, 중국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온 중국풍의 화려한 티베트 전통의상 가게들 맞은 편, 티베트 옷 가게에서 만난 쏘남은 한숨을 쉬듯 말했다.
"티베트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라싸에서 집을 살 수도 가게를 차릴 수도 없어요. 라싸의 모든 것들이 티베트 사람들에겐 너무 비싸요."그렇다고 돌아갈 유목의 땅과 삶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다. 광활한 목초지는 개발을 위해 강제수용 당했고 농지는 한족을 위한 주거지 등으로 용도 변경을 당했다. 물론 그렇게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티베트인들에게는 중국 정부의 '유목민의 정주를 위한 지원정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들판을 버리고 정주할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 말해주지 않은 듯했다.
추운 들판에서 밤을 새워야 하는 유목의 삶 보다는 레스토랑의 웨이터가, 호텔의 청소부가 되는 편이 삶도 편안했고 현금을 얻기도 쉬웠다. 티베트의 젊은이들과 여성들은 한족들이 운영하는 호텔의 객실청소부로, 인력거꾼으로, 식당의 접시닦이로, 웨이터로, 기념품 판매원으로 하나 둘, 그들의 들과 산을 떠나 이주하기 시작했다. 인구 19만명의 라싸에 몰려드는 400만명의 관광객들을 위해 누군가는 일년 내내 방을 청소해야 했고, 인력거를 끌어야 했고, 접시를 닦아야 했으므로….
중국의 관광자원이 된 오체투지, 순례자.... 그리고 티베트 불교그럼에도 라싸는 여전히 도처에서 마주하는 티베트의 전통과 티베트 사람들로 그득했다. 티베트 전통옥을 입고 마니차를 돌리며 포탈라의 바코르를 도는 수백 수천의 티베트 사람들, 몇 달에 거쳐 그 더디고 느린 오체투지의 걸음으로 끝내 죠캉에 이르는 순례자들.
죠캉 앞에 설 때면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누구나 묻게 되곤 했다. 라싸의 거리에 나서면 어디서든 선뜩 주황 가사를 입은 티베트의 승려들을 만날 수 있었고, 라싸에 살아가는 티베트 사람들은 어디든 조금만 높은 곳이면 기도깃발·타르쵸를 걸어두고 있었다.
티베트 자유화 정책 이후 중국이 허용한 종교적 관용 속에서 티베트 사람들은 그렇게 야크버터를 가지고 사원을 오르는 것으로, 오직 믿음의 힘으로 저 고단한 삶을 견뎌내고 있는 듯했다. 적어도 여행자들이 카메라에 담아오는 티베트의 풍경 속에서는.
그러나 이미 이십년 전, 티베트를 방문한 영국의 외과의사 로버트 로프 교수는 그 티베트의 모습마저도 중국이 "티베트 불교를 외화벌이용 관광자원으로 이용"하기 위해 허락한 풍경들일 뿐임을 갈파했다.
그는 "중국은 단지 기도 깃발(타르쵸) 세우기, 향 태우기, 오체투지하며 이동하기를 통해 종교적 열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묵인할 뿐 지정한 종교수행, 승려들의 가르침에는 철저한 제한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누구든 사원을 순례할 수는 있으나 달라이 라마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기만 해도 5년형을 살아야 하는 종교의 자유, 그것이 중국이 허용하고 있는 티베트의 불교였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관광객을 위해 베풀어둔 거리의 종교적 자유 너머, 저 높은 사원의 담 안쪽에서는 다른 삶이 강제되고 있다는 기록과 증언들이 터져 나왔다. 체제에 동의하지 않은 승려들에 대한 혹독한 고문들, 비구니 승려에 대한 잔혹한 강간은 그 증언과 사례를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
1950년 티베트 점령 당시 60만에 이르던 승려 중 11만이 고문으로 사망했고 25만명이 승직을 박탈당하고 구금되거나 강제노동에 끌려갔다.
분쟁지역전문가 하영식은 티베트 정치범 출신의 다람살라 난민들을 인터뷰하며 "티베트의 중국 교도소에 정치적 이유로 수감된 재소자 가운데 70%가량이 승려 출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저항의 핵심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중국의 종교탄압 정책이 가장 주된 원인이라고 그는 분석하고 있다.
감옥에서 죽어나온 승려들의 온몸의 뼈는 부러져 있기 일쑤였고, 어떤 강제노동 수용소의 사망률은 95%까지 치닫기도 했다. 구 캄 지방의 벤첸 사원에서는 3천명의 승려 중 단 8명만이 살아남은 믿을 수없는 기록이 남아있기도 하다. 그 혹독한 시절을 지나 살아남은 승려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애국훈련을 받아야 하고 때로 애국시험마저 치러야 했다.
그 '훈련'이란 달라이 라마를 부정하고 비난하고 사진을 짓밟고 더 나아가 중국의 점령을 찬양하는 일이다. 그것으도 모자라 그 안에 어떤 저항의 움직임이 불거져 나올지 몰라 사원에는 승려의 복장을 한 사복공안이 뒤섞여 있다. 그 모든 억압의 죽음과 폭력의 풍경들 위에 우뚝 서 있는 것이 우리가 그토록 소원해 마지않는 순례자의 땅, 라싸의 풍경이었다.
티베트 여행,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그 차가운 점령과 관광의 함수에 눈을 뜬 어떤 이들은 일찍이 티베트 여행을 중단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것은 중국의 점령의 적법성을 인정해 주는 행위이며 무엇보다 우리가 여행에서 쓰는 경비의 90%는 모든 (입경허가서·칭짱철도·항공료·입장료) 중국정부의 호주머니에 고스란히 들어가며, 그 돈은 중국의 티베트 점령과 한족 이주 정책을 공고히 하자는 데 쓰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티베트의 다른 한켠, 망명정부의 수장 달라이 라마를 비롯한 티베트의 사람들은 도리어 지금보다 더 많은 여행자들이 티베트를 향해 여행해야 한다고, 되려 길을 독려하기도 했다. 지금 여행자들이 티베트에 가지 않는다면 누가 티베트의 점령을 목도할 것이며, 누가 그들의 고통과 신음에 귀 기울일 것이며, 어떻게 그것을 기록하고 진실을 보전할 것이냐는 목격과 증언의 요청이었다.
티베트를 여행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여전히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다시 티베트를 향한 모든 길은 열리고 관광의 물결이 거세어지는 가을, 어쩌면 우리가 가져야 할 보다 근원적 고민은 티베트에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여행자가 될 것인가의 문제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시선으로 티베트를 구경하는 관광객이 될 것인가 혹은 점령의 차고 시린 그늘에 서서 티베트의 눈으로 티베트를 바라보는 여행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참고한 자료 : International Campaign for Tibet, <티베트, 말하지 못한 진실>(폴인그램 저, 홍성녕 옮김, 알마), 2008년 8월 8일 자 <한겨레 21>,
www.tibet.org www.freetibet.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