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녕전1985년 1월8일 보물 제821호로 지정된 종묘 영녕전
이종찬
살아서도 왕과 왕비 대접 못 받았는데 죽어서도...7일(일) 오후 3시. '조선시대 죽은 왕과 왕비들의 천국' 정전을 둘러보고 창경궁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종묘 영녕전(宗廟 永寧殿, 서울특별시 종로구 훈정동 2-1). 1985년 1월8일 보물 제821호로 지정된 종묘 영녕전은 정전에서 쫓겨난 서자처럼 정전 서북쪽에 엉거주춤 서서 정전을 곁눈질하고 있다.
영녕전을 꼭꼭 숨기고 있는 대문 기둥에는 빛이 약간 바랜 빨강 파랑 노랑 태극무늬가 예쁘게 박혀 있다. 영녕전 안으로 들어서자 촘촘촘 박힌 널찍한 돌마당을 물고 있는 초록빛 예쁜 잔디밭에 까치 몇 마리 앉아 초록빛을 열심히 쪼고 있다. 길라잡이가 가까이 다가가자 까치 몇 마리 서너 번 통통통 튀더니 이내 초록빛을 물고 정전 쪽으로 날아간다.
까치 몇 마리 날아간 푸르른 하늘엔 햇살이 유리가루처럼 하얗게 부서져 내리고 있다. 눈이 부신다. 마치 영녕전에 모시고 있는 왕과 왕비들의 혼백이 따가운 햇살이 되어 정전을 향해 수없이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다. '살아서도 왕과 왕비 대접을 제대로 못 받았었는데, 죽어서도 대접을 이 따위로 할 수 있느냐' 따지는 것처럼.
영녕전 앞에 선다. 영녕전은 정전과는 달리 가운데 건물이 볼록 솟아올라 양쪽 건물을 날개처럼 펼치고 있다. 전체 건물보다 약간 높게 지은 이 가운데 건물에는 방이 4개 있다. 그 방에 조선 태조 4대조인 목조, 익조, 탁조, 환조와 왕비들 신주가 있다. 이는 조선을 세운 태조의 조상들이니 더 높이 받들겠다는 뜻이다.
그 곁, 서쪽 5번째 방부터 16번째 방까지 정종과 왕비, 문종과 왕비, 단종과 왕비, 덕종과 왕비, 예종과 왕비, 인종과 왕비, 명종과 왕비, 원종과 왕비, 경종과 왕비, 진종과 왕비, 장조와 왕비,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태자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하지만 신주를 직접 볼 수는 없다. 그저 굳게 닫힌 방문과 안내자료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떡여야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