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백의 연작소설집 <누가 말을 죽였을까>
삶이보이는창
2006년 <890만번 주사위 던지기>로 1970, 80년대를 풍자한 그가 최근 정통농촌소설을 한 권 내놨다. <누가 말을 죽였을까(삶이 보이는 창 펴냄)>다.
세상을 떠난 재담꾼 이문구의 입담을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의 풍자와 해학이 제대로 배인 작품이다.
판소리꾼이자 연출가인 임진택이 "그의 소설은 자유분방하면서 흥미진진하고, 시끌벅적하면서 화기애애한가 하면, 비분강개하다가 태연자약하고, 능청 익살맞다가 청승 비감하고, 우렁우렁하다 다시 소곤소곤하고, 통쾌무비하다 망연자실하다"면서 감탄했을 정도다.
이 책엔 10년을 넘긴 그의 농촌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임진택이 감탄한 것처럼 소설 속 인물들은 바로 옆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맞아, 맞아 사람이 원래 저렇지, 나도 저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라는 생각이 절로 나온다.
'농촌사람은 선하다, 도시사람은 영악하다'나 또는 그 반대논리를 들이대며 이분법으로 손쉽게 가르지 않은 탓이다. 이는 그가 실제 농촌에 살고 있으면서 관찰자로서 시선을 잃어 버리지 않은 탓이다.
농촌사람들은 피곤하다"종필은 정보화마을인지 뭔지가 되고서 마을회관에 머리 허연 이들부터 애 업은 여자들까지 컴퓨터 배우느라 시끌시끌하던 일을 익히 알고 있었다. 집집마다 인터넷인가가 들어오고부터, 여편네들은 고스톱을 컴퓨터로 친다며 꿀이라도 발라놓은 것처럼 온종일 방구석에 붙어 지내더니, 급기야 애 엄마까지 컴퓨터에 달라붙어 맞고에 미쳐 지내는 걸 알고 있었다."지난 시절, 대한민국 경쟁력 강화라는 이름 아래 또는 농촌살리기라는 이름 아래 농촌은 많은 외풍을 맞았다. 우루과이 라운드, 골프장 건설, 정보화마을, 생태마을, 행정수도 이전, FTA협상, 농협야구단 창설 등은 그동안 농촌에 불어 닥친 외풍들이다.
책엔 이런 외풍들이 농촌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생생하게 나온다. 기사나 방송에선 '농촌에 1조원 지원' '농촌에 10조원 지원'과 같은 수치만 나올 뿐, 그 결과를 보긴 힘들다.
'정보화마을'이라고 농촌에 최신 컴퓨터를 깔아놓은 뒤 풍경은 영화 <부시맨>에서 원주민마을에 콜라병이 떨어진 뒤 벌어지는 해프닝을 떠올리게 한다. 아낙들은 컴퓨터 도박에 푹 빠져 버리고, 남편들은 아내들이 낯선 남자와 채팅을 하진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구본중 이장의 모습도 시사적이다. 구 이장은 어느 날부터 농사에 흥미를 잃어 버렸다. 행정수도 이전 소식이 들리면서 평당 3만원에도 둘러보겠다는 사람이 없던 땅에 신문지에 둘둘 만 돈다발을 든 사람들이 줄을 지어 찾아오는 모습을 보면서부터다. 땅이 나빠 못자리로도 못 쓰던 곳을 팔아 목돈을 손에 쥐게 되니, 그동안 농사 지은 삶이 영 미련스럽게 느껴진 탓이다.
느린 농촌의 삶과 빠른 도시문명이 충돌하면서 교통사고도 크게 늘었다. 자동차를 몰고 휴일을 즐기러 오는 도시인들이 늘고, 농촌에도 자동차 인구가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제대한 지 일주일도 안된 갑동 근제네 맏아들이 술 먹고 운전한 차에 받혀 충용이는 그 자리서 세상 뜨고, 그 처는 반년을 병원에 누워있어야 했다. 소 기르던 병규가 김치 공장서 나오는 배춧잎 주워다 소 먹이려고 경운기 끌고 나가다가 트럭에 치여 이틀 만에 병원서 죽고, 트랙터가 논 구렁에 빠져서 갓길에 서 있다가 승용차에 치어 절름발이가 된 금병 씨나, 자전거 타고 가다 차에 받쳐 갈비뼈가 몽창 부러진 양태 노인이며, 이젠 멀쩡하니 사는 이가 드물 지경이었다."농촌사람들은 도시사람을 이렇게 생각한다